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들의 죽음은 우리와 연결돼 있다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22. 13:02

본문

ㆍ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ㆍ은유 지음·임진실 사진
ㆍ돌베개 | 252쪽 | 1만5000

 

이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 ‘피자를 시켰더니 같은 반 아이가 배달을 왔다더라’는 얘기는 몇 번쯤 들어본 레퍼토리다. 제 몸 써서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의 귀함을 설파하는 미담이 아니라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는 괴담처럼 학부모 사이에 유통된다. 한 아이의 삶을 부분 탈취해 훈육과 통제의 도구로 삼는 행태는 천박하지만 그런 무지막지한 경고가 극단적 현실로 드러나는 세상은 더없이 참담하다. ‘저렇게 된다’고 어른들이 떠드는 동안 정말로 한 아이가 죽었다.”

2014년 초봄, ‘알지 못하는 아이’가 죽었다.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이었던 고3 김동준군은 12시간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뺨을 맞고 엎드려뻗치기 자세로 머리를 밟힌 후 트위터 등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솔직히 정말 약한 소리지만, 너무 무서워서 아침에 출근하기가 싫어요… 진짜 나약한 소리지만 회사 다니기가 이렇게 싫어질 줄 몰랐어요. 스스로를 약자로 정의하고 도망가는 비겁자로 보일 수도 있어요.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전 비겁하니까… 발걸음을 향하는 지금 이 순간도 너무 겁이 나요.” 그리고 공장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리기 전 담임 선생님에게 이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저 무서워요….”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저자인 은유 작가는   2014 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김동준군이 노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 SNS ) 등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떠난 이의 삶을 추적해 재구성했다. ⓒ임진실 돌베개 제공



김군의 메시지에는 자신을 착취하고 학대한 회사와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그것을 견뎌낼 만큼 강하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자책이 반복된다. 그는 ‘스스로를 약자로 정의하고 도망가는 비겁자’라고 했지만 사실 현장실습생에 불과한 그는 스스로 정의할 필요조차 없는, 틀림없는 약자였다. 도대체 왜 이 사회에서는 약자인 것이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 되고 마는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인 은유 작가는 김군이 노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떠난 이의 삶을 추적해 재구성한다. 또 김군의 어머니, 이 사건을 언론에 알린 이모, 김군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부터 2017년 제주에서 목숨을 잃은 또 다른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의 아버지, 특성화고 교사, 특성화고 재학생·졸업생 등 죽음 이후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포개고 겹쳐본다.

원래 김군이 마이스터고에 간 이유는 그의 꿈인 프로그래머가 되기 위해서였다. 흔히 특성화고는 공부하기 싫어하고 꿈도 없는 ‘낙오자’의 집합소처럼 여겨지지만, “특성화고 학생에 대한 편견은 대개의 편견이 그러하듯 ‘잘 모름’에서 생겨나고, ‘접촉 없음’으로 강화된다”. 김군은 마이스터고에 진학한 걸 자랑스러워했다. “고등학교 시절이 내가 태어나서 제일 잘 보낸 기간이야. 마이스터고를 선택하기 잘했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하지만 입사 후 그가 한 업무는 전공과 전혀 무관한, 소시지 공장에서 포장을 하는 일이었다. “차라리 죽었으면 편했을 걸, 나는 왜 시발, 살아 있어서 술을 억지로 마셔야 하죠? 강제로 노래 부르고 춤춰야 하고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1분1초라도 여기서 더 살려면 강한 게 필요해요.”

책에는 시몬 베유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 나온다. “학교를 다니는 어린이는 그가 좋은 학생이건 나쁜 학생이건 간에 그 존재를 인정받은 인간이며, 사람들은 그의 능력을 신장시키려 애쓰고 그의 양식에 호소하고자 한다. 그러나 일단 공장에 들어가면 기계 부속품 이하로 전락되는 것이다. 아주 낮은 곳에 있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또 어느 누구도 괴롭힐 힘을 갖지 못한 사람.”

시몬 베유의 말과 달리, 우리 사회에서 특성화고 학생들은 공장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미 ‘부속품’ 취급을 받는다. 똑같은 고등학생이라도 인문계에 다니면 그냥 고등학생이지만, 특성화고에 다니면 반드시 그 앞에 ‘특성화고’가 낙인처럼 따라붙는다. 게다가 특성화고 학생은 ‘현장실습생의 죽음’ 같은 기사를 통해서만 “불우한 존재로 납작하게 재현된다”. 그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은 “그들 삶의 기본값”처럼 인식된다. “원래 불우했으니 계속 불우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반복될수록 사회적 안타까움의 정도는 오히려 낮아진다.

2017년 제주의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나간 이민호군이 기계에 목이 끼여 열흘 만에 숨졌을 때도, 전국의 관심은 나흘 후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쏠려 있었다. 업체는 실습생에 불과한 이군을 ‘알차게’ 써먹었다. 기계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이 회사를 그만두자 그가 했던 모든 일을 이군에게 떠넘긴 것이다. 이군이 다뤄야 했던 기계는 잦은 고장 때문에 전임자가 몇 번이나 고쳐달라고 요청한 기계였다. 사고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2017 년 4월 부산에서 열린 특성화고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채용 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아이들은 부당한 지시와 폭행에 저항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승용차 상석의 위치와 회의실 에티켓 같은 것을 가르치는 ‘직장예절’ 과목은 있어도, 노동인권 과목은 없다. 학교는 아이들이 현장실습을 포기하고 돌아올까 전전긍긍한다. 문제가 생기면 다음해 그 업체에 학생을 취업시키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성화고 3학년생인 임현지양은 “현장실습에서 문제가 발생해도 저 역시 얘기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우리는 알지 못하잖아요. 이게 부당한지 아닌지. 시키는 걸 못하면 제가 일을 못하는 게 되니까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김동준군과 이민호군의 유가족을 지금까지 가장 힘들게 하는 것도 “회사 말이라고 다 옳고 어른 말이라고 다 정답이 아니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라고 말해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김군의 어머니인 강석경씨는 일요일 저녁 집을 나설 때 울면서 회사 복귀하기 싫다고 하는 김군을 달래 회사로 보낸 것이 지금도 가슴에 사무친다. “직장이 싫으니 좋으니 그러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그래도 또 가는 게 인생이라고, 세상 사는 게 다 그렇게 힘든 거라고 말했던 게 너무 후회돼요. 우리가 잘못 가르쳤어요.”

그렇게 이 죽음들에 대한 죄책감은 오롯이 부모의 몫으로만 남았다. 이민호군의 아버지인 이상영씨는 이렇게 말한다. “제 잘못이죠. 제가 느낀 게 그거예요. 교육부,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회사는 잘못이 없다는 거예요. 그럼 누가 잘못했냐? 아빠 잘못이야. 돈 없는 아빠 밑에 태어난 게 잘못이고, 돈 없어서 좋은 교육 못 시켜서 특성화고 가게 만든 것도 아빠가 잘못이지.”

이군의 목숨을 앗아간 공장은 벌금 몇 천만원만 낸 후 지금도 재가동되고 있다. 그 공장의 정문 오른쪽 벽에는 이군이 죽는 날에도 ‘안전우수업체’라는 인증마크가 붙어 있었다. 현장실습을 보낸 학생들을 관리해야 할 특성화고 교사는 실습 기간 두 번 현장을 방문했지만, 유리창 너머로 잠시 지켜본 게 전부였다. 교육부는 이군의 사망 후 실습 기간을 단축시켰다가 특성화고 취업률이 하락하자 지난 1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해 다시 기간을 연장했다. 고무줄처럼 실습 기간만 줄였다 늘였다 했을 뿐 문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김군의 이모 강수정씨는 “이 사회는 특성화고 아이들에게 노동인권 교육을 일부러 시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순진하고 멍청하게 개처럼 일하길, 무식하길 바라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기 문제가 되기 전까지 산재사건이니 차별 문제 같은 걸 떠올리기 싫어해요.” 어쩌면 이군 아버지의 말처럼 “세상을 바꿀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힘을 너무 많이 가졌다”는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김군 사건을 맡았던 김기배 노무사는 약자에게 가해지는 일상의 폭력을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적한다. 노동인권 교육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기 위해 지방교육청을 찾아간 김 노무사에게 교육감은 “조치를 취해보겠다”고 하면서도 뜬금없이 “제가 해병대 출신인데…”라는 말을 늘어놓았다. 한국 사회의 일상적인 폭력이 어린 현장실습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말하러 간 그에게 교육감은 ‘요즘 애들이 약해서’라는 말을 우회적으로 하려 했던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그 교육감은 전교조 활동도 열심히 한, 모두가 신뢰하는 교사였다고 해요. 무슨 얘기냐면, (그런 사람조차) 모를 정도로 우리 사회에 채워야 할 빈틈이 많다는 거예요.”

청소년 노동이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환경과 문화에서는 누구의 노동도 안전하지 못하다. 현장실습생이 아니더라도 이직을 하거나 새로운 부서에 발령을 받으면 우리 모두 낯선 환경에 던져진 ‘실습생’이 된다. 업무가 서투르거나 성격이 소심하면 조직에서 ‘약자’가 된다. 저자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잠재적 실패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수용한다면 현장실습생의 죽음이 더 이상 신문에서나 보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면서 “그렇게 모든 존재의 고통은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특성화고 학생들은 우리에게 ‘알지 못하는 아이’였다. 모든 청소년은 학교에 다니고 학생이란 전부 수능을 치는 예비수험생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특성화고 학생은 사회적 분위기와 맥락에 따라 자연스레 비가시화됐다. 마치 대중교통을 탈 수 없는 장애인을 거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처럼.

하지만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사실 우리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아이’, 혹은 ‘알면서 모른 척했던 아이’의 죽음이기도 하다.

특성화고 교사인 장윤호씨는 이렇게 말했다. “치킨 배달을 시켜 먹는데 치킨값이 1만원이라고 하면, 비싸다고 느껴요. 그런데 배달 알바 오는 아이들 중에 특성화고 아이들이 많잖아요. 나한테 배달 온 아이가 최저임금도 못 받아요. 얘한테 최저임금을 제대로 챙겨주기 위해서는 내가 1만2000원에 먹어야겠죠. 그 전에는 업주를 욕했어요. 이 업주가 노동착취를 하고 있네? 그런데 정말 문득 든 생각이에요. 나도 노동착취를 하고 있구나. 싼값에 먹으려고 했으니까 다 같이 착취하고 있었던 거죠. 어느 한 개인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