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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아팠지만 항상 강인했던…‘할매들의 이야기’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22.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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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할매의 탄생
ㆍ최현숙 지음
ㆍ글항아리 | 472쪽 | 1만9800

<할매의 탄생>에서 자신의 인생을 구술한 대구시 우록리 할머니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나란히 서 있다. 왼쪽부터 임혜순·이태경·곽판이·조순이·유옥란·김효실 할머니. 글항아리 제공



‘할배의 탄생’ 쓴 작가, 두매산골 여섯 할매의 생생한 말 받아 적어

걸쭉한 사투리는 해석이 필요하지만 투박한 삶엔 말이 필요없는 이치

구술 대부분 ‘통증’으로 시작…그 속엔 배운자들을 뛰어넘는 자부심

“불쌍한 어머니가 아닌 고난 견뎌낸 주체적인 힘 제대로 읽혀지길”



이야기를 품지 않은 삶은 없다. 모든 이의 생애는 그 자체로 완전한 하나의 역사이다.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입으로만 쓰인다. 지배자의 생애 하나에 국가 역사 전체를 상징하는 대표성이 부여될 때 “국가의 역사를 밑바닥에서 떠받쳐 온 개인들의 역사”에는 이름조차 주어지지 않는 군중의 역할만 할당된다.

구술생애사는 이렇게 방치된 채 조용히 소멸되어 갈 운명에 처한 이야기 하나하나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자신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자들의 말을 듣고 대신 옮겨주는 작업이기에, 구술생애사는 필연적으로 가난을 지향한다.

2016년 <할배의 탄생>(이매진)을 통해 어르신과 꼰대 사이에 놓인 가난한 남성들의 시원을 들려줬던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할매의 탄생>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그가 만난 사람들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우록리 산골짜기에 사는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농촌·젠더·노인·비문자 생활자라는 이슈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최 작가는 지난 10여년간 천착해온 도심 속 빈곤한 노인들의 이야기에서 농촌의 할머니들로 시선을 확장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동안 만나온 서울의 7090세대 노인 대부분은 삶의 뿌리가 다 농촌이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안 살겠다’ 결단하고 도시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분들이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빈농에서 도시 빈민으로 위치만 바뀌었다. 그렇다면, 탈출하지 못하고 농촌에 남게 된 할머니들의 삶은 어땠을까. 그 차이를 주목해보고자 했다.”

우록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마저도 비껴간 첩첩 산골짜기 마을이다. 지금도 동네 주민들의 소원은 마을에 버스가 들어오는 것일 정도이다. “여까지 공무원이라 카는 기 와본 역사가 없어예. 여는 마 국민도 아니라예, 하도 꼴짜구라서.”(조순이·82)

구술생애사인 만큼 책은 할머니들의 구어체를 최대한 살려 서술했다. 한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 없는 할머니들이 구사하는 순도 100%의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문자 그대로 옮겼기 때문에 ‘해석’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문장도 있다.

이야기 흐름을 가능한 한 방해하지 않고 따라가다 보니, 앞에 했던 이야기가 뒤에 다시 나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가독성을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그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다듬지 않고 실은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최 작가는 “한 사람이 자기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어떤 부분을 반복해 말한다는 것은 구술 인터뷰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똑같은 소리를 또 하네’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왜 이 사람이 그 부분을 거듭 말하는지 이해하면 그 속에 담겨 있는 더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할머니들의 구술은 대부분 통증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대화 중에도 간혹 구술의 맥락과 상관없이 통증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지겹더라도 계속 들어달라”고 당부한다. 이들의 통증은 어머니를 일찍 여읜 후 열살 무렵부터 집안일을 도맡으며 어린 동생을 키워내고, 가난한 산골마을로 시집온 후에는 친정에서보다 더 많은 집안일과 농사일을 해야 했던, 고난과 희생의 삶이 빚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투리를 그대로 살린 것도 가진 자들, 많이 배운 자들이 정한 ‘표준’을 깨뜨리고 개별성과 변방성을 살려내기 위해서다. 저자는 “배운 사람들은 못 배운 사람들의 말을 알아먹지 못한다”면서 “사투리를 살린 것은 낮은 계층 사람들의 말과 문화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혹 가독이 어렵다면 그 김에 못 배운 분들의 말을 소리 내어 읽으며 공부했으면 한다”고 말한다. 실제 할머니들의 구술은 공부를 해서라도 읽을 가치가 있다. 대부분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못 배운’ 할머니들이 투박하게 풀어놓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글로 배워본 적 없는 이치가 담겨 있다.

조순이 할머니는 사이가 좋지 않아 자신을 평생 고생시켰던 시어머니를 이해하면서, 자신의 며느리를 이해한다. 그리고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진정한 어른이 어떤 것인지 고민한다.

“시오마이가 통이 커가 내는 그기 힘들었어예. 내 시집와가 애끼고 살라카는데, 시오마이는 이래 퍼주구 저래 자꾸 퍼주구 그랬는데… 손주들이 잘되더라 카이, 하하하. 거를 그때는 몰랐지예. 내헌테 잘했나 몬했나 그거로만 봤는 기라. 내 시오마이 돼 보이 알고, 미누리 때는 모릅디다. 우리 미누리도 내 용돈 주는 거 지가 딱 거머쥐고 마이 몬 주구로 하고 저카지만, 지도 미누리 보만 ‘우리 시오마이가 그캐서 그캤는갑다’ 그래 생각될 날이 있을 거라예. 어른이 빌 게 아이고, 죽고 나서 자식들한테 갈챠줄 기 있는 기, 그기 어른입디다. 우리 시오마이는 어른이지예. 뒤늦게라도 내가 배우는 게 있으니까네. 모르지예. 내가 어른일지 말지는. 그거는 내 죽고 자슥들 늙고 나서, 지네들한테 물어볼 일이라예.”

우록리 할머니들은 다 늙고 병들어 죽음이 가까워진 지금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홀가분하고 편해 보인다. 농사일, 길쌈, 새끼 꼬기 등 허리 한번 펼 틈 없이 시달리던 노동에서 해방되고, 시부모·시동생 수발까지 들다가 정작 자기 자식 돌볼 틈도 없던 시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의 몸뚱이 하나만 신경 쓰면 된다. 너무나 뒤늦게 얻은 자유이다. 영감은 하늘로 보내고, 자식들은 서울로 보내고 혼자 쓸쓸할 때도 있지만 “사실 할매들은 혼차 되마 편타”. 옛날에는 내다팔 물건을 이고 지고, 아이까지 등에 업은 채 장터에 가서는 돈 아끼려고 점심도 먹지 않고 집에 돌아와 끙끙 앓아누웠다. 요새는 “돈 딱 내고 국시라도 묵고 온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우록리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이곳의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도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부지는 학교도 가라 캤어예. 근데 아부지가 원래 불구라가 혼자서 힘이 없으니 버리고 갈 수가 없었어예. 맏이다보니 ‘내 하나 희생하면 아부지 도와서 동상들 다 공부시키고 편하게 안되겠나’ 그래 생각했던 거라. 새끼 꼬라믄 꼬고, 담배 널라믄 널고, 마 안 하는 게 없었다 카이. 엎어지미 자빠지미 세월 보내마 정신없이 살다보이, 세월이 언제 가버린 건지 기가 맥힐 노릇이지. 그래 살다가 인자 좀 덜 바빠지이 자연이 보이는 거라. 봄 되면 파릇파릇 나오고 철철이 새로운 거 나오고 하는 거 보마 ‘자연이라 카는 게 이렇게 오묘하고 위대하구나’ 절로 느끼는 거라. 시간 여유가 생기니 마음 여유도 생겨가, 눈에 보이는기 달라지는 거라.”(김효실·65)

그러나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세상의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눈에 띌수록, 고생만 하다 흘러가버린 생애가 그만큼 더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정신없이 씽씽 변하는 세상”은 야속하게도 상실감의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어릴 때부터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물 이러 다닌 탓에 지금도 손발이 자주 가렵다는 유옥란 할머니(77)는 “뜨건 물이 펑펑 나오고, 세탁기가 다 빨아주는 이래 좋은 세상이 왜 이제야 왔는가 원망시럽다 카이. 내 어렸을 때 왔으마 좋았을 긴데 말이라”고 말한다.

임혜순 할머니(77)는 “살아온 게 다 한심하고 속에 불떡증이 나서” 우울증 치료약을 6개월째 먹고 있다. “자꾸 아프이께네 이리 살아가 뭐하나 싶고 그렇다 카이. 내는 마 사는 재미가 없어예. 아아들 잘사는 건 좋지만도 거는 마 지들 일이고, 내랑은 지네랑은 다른 거지예. 다행은 다행이지만도, 그기 내 사는 재미는 아니지예.”

자식들의 탈농과 성공을 위해 평생을 노동으로 일군 할머니들의 삶은 가부장적 환경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들은 올해도 “콩 쪼매 숭구고, 들깨 쪼매 숭구고, 상추·배치도 좀 숭구”며 살아간다. 꼬부라진 허리와 망가진 무릎으로 밭을 가는 할머니들의 터전이 자식들 사회에서는 별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땅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농촌의 ‘마지막 세대’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억울치. 억울코 말고. 농사가 나쁘다는 기 아이라 농사지어가 나오는 거를, 농사짓는 사람을 우습게 아는 세상이 나쁘다는 거라. 여 할마이들은 농사 말고 다린 걸 몰라가 농사만 짓고 산 기라. 여스개라고 핵교도 안 보냈으니 다린 걸 보고 배울 뭐가 없었고…. 다 자석들 안 굶기고 쪼금이라도 더 갈치고 할라꼬 일한 기라. 농사일이 좋아가 했겠나. 하지만 평생을 그리 살았으니 별 수 없는 기라. 다 늙어가 허리가 곯아뿌렀어도, 봄 되마 또 밭부터 갈고 앉았는 기라. (자식들이) 병원비도 안 나온다꼬 그만하라고들 하지만, 이 멍충이 할마이들은 영감이 죽고 자슥이 죽어 나가도 논에 모 숭구러는 가고 그래 살아온 거라.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모를 숭궈야 하는 거라. 그라이 아무리 기가 차고 억울해도 땅은 갈아야 하는 거라. 그래 살아놓이 한이 많지마는, 그래 살믄서 또 한을 잊은 거라.”(곽판이·91)



도시 노인과 농촌 노인의 생애를 모두 귀 기울여 들어 본 최 작가는 농촌 노인에 대한 세간의 동정 어린 편견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동안 농촌에 남겨진 노인들은 도시로 ‘탈출’하는 데 실패한 ‘패배자’로 보여졌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가 본 농촌의 노인들은 도시 노인들에 비해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긍심이 더 컸고, 문화적 소외감이 덜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문만 열고 나가면 자기 몸의 연장선인 밭과 논이 있다. 부자는 아니지만 땅과 집이 있기에, 자식들이 볼 때는 몇 푼 안되는 재산일지라도 아직 물려줄 게 있다고 느낀다. 반면 도심 속 노인들은 버스만 타고 나가면 휘황찬란한 신자유주의의 물질문명과 부딪치면서 더 큰 괴리감을 느낀다. 부양의무제 같은 사회제도는 가족의 해체를 강요한다.

어떻게 보면 최 작가는 우록리 마을의 마지막을 지켜본 기록자일지도 모른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70~90대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더 이상 지금의 우록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빈집은 폐가가 돼 자연으로 돌아가거나, 외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갈 전원주택으로 변화할 것이다. 저자는 “그래서 기록 작업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분들의 삶이 기록되지 않으면, 자식들의 삶을 만들어 주고 우리 사회를 떠받쳐 온 그들의 노동이 정당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채 소멸돼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최 작가는 “최근 TV 프로그램 <가시나들>같이 농촌 비문자 노인들의 삶을 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그들의 삶이 단순히 ‘고생하며 살아온 이 시대의 불쌍한 어머니들’로 읽혀지는 것은 상당히 부족하다. 고난을 견뎌낸 그들 내부의 주체적인 힘과 함께 계급과 젠더의 문제까지 제대로 읽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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