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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용사들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전쟁

by 정소군 2022. 3. 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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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미국은 싸울 의지도 없었다”…“빨리 탈출하고 싶은 나라”
6·25 관련 책 잇따라 출간

미군 병사가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소년에게 전투식량을 건네고 있다(1954·위 사진). 1950년 8월28일 낙동강 전선에서 죽은 전우를 애도하며 미군 병사들이 서로 어깨를 감싸고 있다. 그 옆에서 의무병이 사상자 목록을 작성하고 있다.ⓒ루퍼트 넬슨·눈빛출판사·미국국립문서보관청·문예출판사 제공


69년 전 발발한 한국전쟁은 “전쟁에 대한 미비와 오판,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만든 기묘한 전쟁”이었다. 이 준비되지 않은 전쟁으로 2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피비린내 나는 한국의 계곡과 고지, 능선 곳곳에서 희생됐다.

한국전쟁 69주년을 맞아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이 잇따라 출간됐다. 한국전쟁의 진행 과정을 치밀하게 복기해 낸 역사기록뿐 아니라, 전후 일상의 풍경과 참전용사들의 얼굴을 담은 사진, 미국 소설 속에 비친 한국전쟁 등 여러 각도에서 한국전쟁을 조명해 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전쟁>

장병들 증언·공식 기록 등서 밝힌 ‘미 정부의 오판’ 비판


6·25 참전용사이자 미국의 역사저술가인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쓴 <이런 전쟁>(플래닛미디어)은 제임스 매티스 전 미국 국방장관이 여러 차례 일독을 권해 관심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매티스 전 장관은 2017년 한 행사에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미군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구체적인 답변 대신 “페렌바크의 책을 읽어 보라”고 말한 바 있다.

1963년 출간된 이 책은 페렌바크가 한국전쟁 참전 미 장병들의 생생한 증언과 공식 기록, 작전계획,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모아 기록한 것으로 한국전쟁을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분석한 종합적인 역사서이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은 싸울 의지도 없었고 소련을 상대로 전면전을 할 생각도 없었다.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하게 오판하기도 했다. 미국은 6·25전쟁을 ‘한국전쟁’으로 부르지 않고 ‘한국분쟁’으로 부르며 며칠 혹은 몇 달 안에 정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참전했다가 재앙을 맞게 된다. 그 대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한국전쟁에 투입된 병사들과 시민들의 목숨이었다.

저자는 “준비없는 전쟁에 군인과 시민을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은 범죄에 가까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매티스 전 장관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 의도 역시 한반도에서 또다시 비극이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잊혀진 전쟁의 기억>

한국전 다룬 미 소설들 분석…주목받지 못한 이유 추적


미국 전쟁문학 전문가인 정연선 육군사관학교 명예교수는 한국전쟁을 다룬 미국 소설 70여권을 분석한 연구서 <잊혀진 전쟁의 기억>(문예출판사)을 출판했다. 저자는 한국전쟁이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 전쟁이라 주목을 끌지 못했다고 말한다. 2차 대전이나 베트남전을 다룬 미국 소설 중 몇몇이 명작으로 추앙받고 유수 문학상을 받는 동안 한국전 소설은 빈곤한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

미국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한국은 “그저 빨리 탈출하고 싶은 나라”로만 그려진다. 참전 병사들은 “우리는 왜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극동의 조그마한 나라에 와서 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한국전이 과연 미국이 싸울 가치가 있었던 전쟁인지에 대해 해답을 내놓으려 애쓴다.

 


<헬로 코리아>

강원지역 주둔 당시 기차역·민둥산 등 사진으로 담아내


6·25 당시의 한국 풍경과 참전용사의 얼굴을 담은 사진집도 나왔다. <헬로 코리아>(눈빛출판사)는 1953~54년 강원도 화천, 춘천 인근 포병부대에서 측량병으로 근무했던 루퍼트 넬슨이 기증한 사진들을 담은 책이다. 사진들은 포격으로 민둥산이 되어버린 전방 고지, 행군을 하고 있는 한국군의 모습, 기차역에서 미군들에게 먹을 것을 구걸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전후의 가난하고 비참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모습에서는 특유의 천진함과 희망이 엿보인다.

 

 

<원 비르의 훈장>

흑백사진으로 기록한 에티오피아 용사들의 딱한 형편


2007년부터 ‘한국전쟁 참전 유엔 21개국 참전용사 사진 프로젝트’를 작업해 오고 있는 이병용 사진작가의 <원 비르의 훈장>(1950 Korean War Project)도 나왔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에티오피아 용사들과 그 가족들의 얼굴이 흑백으로 실려 있다. 사진은 작가가 2007년 한국전쟁 참전용사 집단 거주지역인 코리아 빌리지를 하루 10시간씩 걸으며 찍은 것들이다. 참전용사들이 대부분 어려운 형편인 것을 목격한 후 느낀 안타까움을 담았다.

내용과 종류는 다르지만 이 책들이 하고자 하는 말들은 모두 같다. 머나먼 타국에서 외롭게 싸워야 했던 참전 병사와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야 했던 시민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비극이 두번 다시 이 땅에서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되돌아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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