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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와 금융위기 5년 후  

국제뉴스/남북 아메리카

by 정소군 2013. 12. 19.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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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연준) 의장이 만들어 놓은 ‘인공 경제’는 그가 떠난 후 무사히 현실로 안착할 수 있을까. 다음달 임기를 마치고 물러나는 버냉키의 마지막 선택은 출구전략이었다. 무려 1년 가까이 ‘뜸들이기’ 끝에 양적완화 축소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임기 8년 가운데 5년을 세계 금융위기란 전대 미문의 사태와 맞서 싸우는데 보내야 했다. 미국 최대의 호황기를 누리다 떠난 전임자 앨런 그린스펀을 생각할 때 버냉키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자업자득”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그는 2005년 첫 취임 일성에서 “그린스펀의 (저금리 정책) 기조를 잇겠다”고 말했다. 3년 후 세계 경제를 뒤흔든 자산거품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고 있었지만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경기침체가 시작된 2007년 12월에는 거꾸로 “금리를 인하해야 할지 (여전히) 갈등스럽다”면서 미적댔다. 버냉키는 언제나 조금씩 늦었고,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결자해지에 나선 그가 재앙에 빠진 세계 경제를 본 궤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버냉키는 지난 5년 동안 미국의 주가를 다시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집값도 2006년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가 퇴임 직전 출구전략에 시동을 걸고 떠나는 것도, 어느 정도 경제가 회복됐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사 브릿지워터 대표인 레이 달리오는 “버냉키가 우리를 ‘핵폭탄급’ 위기에서 구해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성과가 제로 금리와 무제한적인 양적완화라는 유례없이 극단적인 인위적 부양책에 힘입은 것이란 점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9일자 기사에서 현재의 경제상황을 ‘인공 세계(artificial world)’라 표현하면서 “양적완화는 우리의 두통을 해소해 줬지만, 덕분에 우리는 진통제에 중독됐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금융 위기가 회복된 것은 버냉키의 ‘인공 세계’에서 뿐이다.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고 있는 주가와 치솟는 집값 덕분에 미국의 소득 상위 10%는 그동안 입은 손실을 모두 회복했지만, 대다수 미국인의 삶은 여전히 2008년 금융위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가수준을 반영한 미국의 가구 중위 소득은 여전히 1980년대 후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경제위기가 시작될 무렵 12.5%였던 빈곤율은 2012년 오히려 2.5%포인트 높아졌다. 은행이자로 먹고 사는 은퇴자들은 초저금리 정책 때문에 이자수입이 5%에서 1.3%로 떨어져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캘리포니아대와 옥스포드대 학자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계층이 2012년 총 소득의 절반 넘게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지금 당장 연준이 당면한 골치거리는 본격적인 출구전략이 시작될 경우 이 ‘인공경제’조차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푸르덴셜 파이낸셜의 시장분석가인 퀸시 그로스비는 “연준이 시장에 푼 유동성이 주가를 떠받쳐 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양적완화의 축소는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재임 기간 “경제 대통령”이라 칭송받았던 그린스펀이 은퇴 후 자산거품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던 것을 생각할 때, 금융위기를 극복했다는 버냉키에 대한 평가도 아직은 좀더 유보해야 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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