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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애플 통근버스 막아선 미국 저소득층

국제뉴스/남북 아메리카

by 정소군 2013. 12. 22.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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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샌프란시스코 인근 집값, IT기업 고소득자들 탓 폭등…시위대 “당신들 위해 커피 나른 우리는 이제 쫓겨나”


지난 20일 오전 8시15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도시 오클랜드의 ‘웨스트 오클랜드’ 전철역 근처. 통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20여명의 구글 본사 직원들이 하얀 대형버스가 도착하자 줄지어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이들 틈에는 청년과 노숙인, 실직자들이 몰래 숨어 있었다. 모두 자리를 잡고 앉을 무렵, 이들은 갑자기 대형 현수막을 펼쳐들었다. ‘공돌이(Techies)들아, 너희 세상은 여기서 환영받지 못한다’ ‘꺼져라 구글!’. 밖에도 수십명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버스를 에워쌌다. 

버스 안에 올라탄 한 시위대 청년이 입을 열었다. “따뜻한 이 구글 버스 안과 달리, 저들은 밖에서 추위와 싸우고 있습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버스 뒷유리창을 깼다. 찬 바람이 버스 안으로 밀려들었다. 구글 직원들의 어깨가 추위로 움츠러들었다. 시위대는 구글 직원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글 직원들은 받기를 거부했다. 유인물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꺼져라, 구글” 지난 20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오클랜드에서 시위대가 ‘구글, 꺼져라’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버스를 가로막자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던 한 직원이 그 모습을 찍어 트위터에 올린 사진. 트위터


‘구글 버스 밖의 저들은 그동안 당신들을 위해 커피를 나르고 아이를 돌봐주고 음식을 만들어왔지만, 이제 이 동네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당신들이 24시간 무료 뷔페 직원식당에서 배불리 먹는 동안, 저들은 쓸모없어진 텅 빈 지갑만 바라보는 신세가 됐다. 당신들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라.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집세가 저렇게 치솟을 일도, 우리가 쫓겨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상황은 당신들이 창조한 현실이다. 아마 당신들은 당신들이 창조한 기술 덕분에 온 인류가 더 나은 삶을 살게 됐다고 믿고 있겠지만, 수혜자는 오로지 부유층과 권력자와 미 국가안보국(NSA)뿐이다.’

KQED 방송 등 샌프란시스코 현지 언론은 같은 날 오클랜드의 ‘맥아더’ 전철역과 ‘24번가 미션지구’ 전철역 근처에서도 시위대가 구글사의 또 다른 통근버스와 애플사 통근버스를 가로막았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애플과 구글 등 기업들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시위가 벌어진 건 이달 들어서만 두 번째다. 뉴욕타임스는 시위대의 규모 자체는 수십명 정도로 크지 않았지만,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한 샌프란시스코 지역의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이란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 사건을 주목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일대는 실리콘밸리의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고소득 전문직들을 위한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애플사의 통근버스가 가로막힌 미션지구에서는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낙후된 주택가를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재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존 원룸 가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 일대의 원룸 임대료는 현재 월 약 300만원에 육박한다. 이는 2년 전보다 27% 이상 급등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기업의 통근버스 정류장 근처는 여기에서 20%를 더 얹어줘야 한다. 원래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은 높은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쫓겨날 판이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언론들은 샌프란시스코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억만장자가 집중된 곳인 동시에, 미국 내 노숙인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이라고 전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통근버스에 따른 교통체증도 이들에 대한 반감을 더하고 있다. 현재 40여개 IT기업들이 통근버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구글은 100여대의 통근버스를 하루 380회 이상 운행하고 있다. 이들 통근버스가 대중교통 구역에 수시로 정차하는 바람에 아침 출근시간마다 온갖 차량과 승객들이 뒤엉키는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직원들은 이들의 시위에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리콘밸리 통근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한 직원은 샌프란시스코의 독립언론 웹사이트인 ‘인디베이’에 “구글과 싸운다고 빈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글은 자신들의 기업 이익을 수천명의 직원뿐 아니라 지역 사회와도 나누기 위해 애를 쓰는 기업”이라는 글을 올렸다. 

일부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들은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과 실리콘밸리를 아예 분리하자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벤처캐피털 사업가인 팀 드래퍼는 실리콘밸리를 독립된 하나의 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농부와 할리우드 배우, 실리콘밸리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각자 다르다. 캘리포니아는 이들 모두를 감싸 안으려 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도시의 심장’이라는 주거권 시민연대를 이끌고 있는 프레드 셔번 짐머는 “우리의 시위는 구글 기업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운행하는 통근버스가 도시에 미치는 악영향 때문이며, 또한 우리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집에서 쫓아내는 기술의 악영향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라고 USA투데이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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