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아시아의 '스트롱맨' 전성시대..."그래도 희망은 민주주의의 편" (2021.4.13)

국제뉴스/아시아

by 정소군 2022. 4. 13. 18:15

본문

‘피플파워’ 혁명으로 일궈낸 아시아의 민주주의는 이대로 쇠퇴하고마는 것일까. 캄보디아부터 필리핀, 태국에 이르기까지 동남아시아 대부분 국가에 ‘스트롱맨’ 전성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의 아시아 내 영향력이 중국으로 대체되면서, ‘스트롱맨’들은 국제 사회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야당 지도자와 인권 운동가를 추방하거나 구금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12일(현지시간) ‘미얀마 쿠데타가 동남아시아의 독재 부활을 완성시키다’라는 기사에서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사태는 아시아 민주주의 쇠퇴 흐름의 정점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왼쪽부터 민 아웅 흘라잉 미얀마 총사령관,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훈센 캄보디아 총리.


10여년 전만해도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이처럼 다시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 예상하긴 어려웠다. 2008년 치러진 말레이시아 총선에서는 야당이 돌풍을 일으키면서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십년 동안 장기 집권해왔던 여당의 3분의 2 의석을 무너뜨렸다. 2014년 인도네시아에서는 군 경력이 없는 최초의 민간인 후보인 조코 위도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첫 직선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시장 개방에 박차를 가하던 베트남에서도 사회적 자유가 점차 확장되고 있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미얀마였다. 1962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수십년 동안 독재 정치를 펼쳐왔던 미얀마 군부는 민간 정부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하고 2015년 가택 연금 중이던 아웅산 수치 여사를 15년 만에 석방했다.

하지만 불과 6~7년만에 동남아시아의 민주주의는 다시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태국에서는 군주제 개혁을 요구하는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졌으나, 2014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강제 진압에 나서며 시위에 참가한 10대 청소년 수십명을 체포했다. 망명한 반체제 인사들은 잇따라 실종되거나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다.

35년 전 ‘피플혁명’으로 독재자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린 필리핀은 새로운 스트롱맨인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돌아왔다. 두테르테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언해 치안 불안에 시달려온 필리핀 시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사법적 절차 없이 수천명을 살해하는 등 권위주의적인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다.

아시아의 최장기 집권자인 캄보디아의 훈센 총리는 망명한 야당 지도자들에게 최장 25년의 징역형을 내려 이들의 입국을 막고, 친인척을 모두 정치적 요직에 앉혀 ‘가족 왕조’를 완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과거 20년 넘게 개발 독재를 이끌다가 은퇴했던 96세의 마하티르 총리가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으며, 베트남도 최근 인권운동가에 대한 탄압의 고삐를 조이고 있다.


필리핀의 정치학자인 리차드 헤이다리안은 이 같은 흐름에 대해 “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퍼펙트 스톰’”이라며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피로도와 독재정권에 대한 향수가 커지고 있으며, 캄보디아와 태국에서는 권위주의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미국의 리더십이 쇠퇴하면서 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점도 원인으로 꼽힌다. 캄보디아와 미얀마 등이 중국의 투자와 지원 덕분에 서구와 국제사회의 경제적 제재를 눈치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남아시아의 스트롱맨들은 늙었다. 이 지역 인구의 절반 이상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30세 미만의 새로운 디지털 세대다. 태국 출라롱콘 대학의 티티난 퐁수디락 교수는 “미얀마와 태국, 홍콩 등에서 ‘밀크티 동맹’을 형성한 디지털 세대의 청년들은 민주적인 삶의 방식과 배치되는 독재정권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금의 현실은 암울하지만, 독재정권은 결코 계속 지속될 수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