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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르지 않다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16.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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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을 겪은 뇌 과학자가 쓴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와 아버지가 자폐 아들을 이해해 가는 과정을 그린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을 함께 읽고 나면, “정신질환의 스펙트럼을 길게 펼쳐놓으면 우리도 반드시 그 띠 안의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

바버라 립스카·일레인 맥아들 지음·정지인 옮김

심심 | 372쪽 | 1만6800


사람 많은 커피숍에 점퍼를 입은 중년 남성이 들어온다. 그는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사람들은 ‘별 미친놈 다 봤네’란 표정으로 피식거리거나, 이 남성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 양 못 본 척 무시한다. 그러나 그 커피숍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오직 한 명만은 그럴 수가 없다. 폴 콜린스는 자신의 테이블 차례가 됐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의 얘기를 하염없이 들어준다. 그에게는 이 남성처럼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다. 커피숍 종업원이 다가와 그의 친절함에 감사를 표하지만, 사실 그는 울고 싶은 심정이다. 아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지만, 콜린스는 여전히 자폐인과 이야기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바버라 립스카는 조현병이 발발하는 핵심 장소가 전두피질임을 밝혀낸 뇌 과학자다. 그의 발견은 학계의 큰 관심을 받으며 ‘립스카 모델’로 불리게 된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미국 국립정신보건원의 인간두뇌수집원 원장이 된다. 그곳에서 수집하는 뇌는 조현병이나 양극성 장애 등을 앓은 정신질환자들의 뇌이다. 환각을 본 뇌, 신비로운 목소리를 들은 뇌, 깊은 우울증에 빠진 뇌…. 이 중 3분의 1은 자살한 사람의 것이다. 그러나 수십년간 뇌를 공부하고 정신질환을 연구해온 그조차도 정신질환자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지 못했다. 그 자신이 몸소 정신질환을 겪으면서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현병을 앓았던 뇌 과학자

자폐 아들을 키우는 아버지

생생한 경험에 담은 메시지

“암이 환자의 잘못이 아니듯

정신질환도 ‘뇌의 병’일 뿐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인간으로서 공감해야 할

사회적 인식이 필요하다”


다른 정신세계와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평생 정신질환을 연구한 뇌 과학자와 자폐아 자녀를 둔 아버지에게도 쉽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기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채로 살아가지 않는가. 온전한 이해의 불가능성이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의 무용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년 전 세계 성인 다섯 명 중 한 명은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양극성 장애 등 적어도 한 종류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는 시대다. 콜린스와 립스카가 쓴 두 권의 책은 그들이 나와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한다.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 과학자입니다>의 저자인 립스카는 2015년 완치된 줄 알았던 흑색종이 뇌까지 전이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상시험에 참여한 그는 이후 이상한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방사선 치료와 면역치료의 이중 공격으로 뇌 전체에 염증이 생기고 부어오르면서 조현병부터 알츠하이머, 양극성 장애까지 다양한 정신질환 증세를 겪게 된 것이다. 30년 동안 다닌 병원의 주차장 입구가 어느 날 갑자기 처음 와본 곳처럼 낯설게 느껴지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출입문조차 찾을 수 없어 길을 잃는다. 하지만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말도 없이 갑자기 건물을 죄다 바꾼 건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환자가 자신의 장애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한 부인이나 대처기제가 아니라 그 병 자체가 발현되는 양상에 가깝다. 판단력을 좌우하는 전두엽 자체가 고장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환각이나 망상을 경험해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지 못하므로 치료에도 격렬히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립스카 역시 자신의 정신은 완전히 멀쩡하다고 여겼다. 그의 뇌는 머릿속에 있는 것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이의 공백을 음모론으로 채웠다. 피자를 먹고 밤에 잠을 자다 갑자기 메스꺼움이 덮쳐와 변기에 격렬하게 구토를 한 그는 물 위에 이상한 플라스틱 조각이 떠도는 환상을 본다. “피자 가게가 우릴 독살하려 하고 있어!”라고 소리쳤지만 남편은 “당신이 토한 건 어제 맞은 주사에 대한 반응”이라고 그를 달래려 한다. 그는 가까운 가족조차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확신한다.

염색을 하다 말고 갑자기 집에서 뛰쳐나가 온몸에 염색약을 뚝뚝 흘리며 정처 없이 헤매고, 길을 걸으며 그대로 바지에 소변을 보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 그는 간단한 나눗셈과 휴대폰 사용법조차 기억해내지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된 후에야 가족의 반강제적 권유로 다시 뇌 검사를 받는다. 뇌의 부종을 가라앉히는 치료를 받으면서 그의 정신은 기적적으로 돌아왔다.

립스카는 “그렇게 오랜 세월 뇌 장애를 연구해왔으면서도 나는 자신의 정신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극심한 불안을 야기하는 일인지 평생 처음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과거는 순식간에 잊히고 미래는 예측할 수도 없으며 어떤 논리도 없는 세계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몸소 경험하면서 그는 비로소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

그가 책을 써서 자신의 경험을 공유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향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사회적 낙인은 여전하다. “관상동맥 질환이 심장의 병이듯 정신질환은 뇌의 병일 뿐”임에도 정신질환자들은 종종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는 “암이 환자의 잘못이 아니듯 정신질환도 환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신질환을 대하는 가장 적절한 태도는 공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일에 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한다.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

폴 콜린스 지음·홍한별 옮김

양철북 | 340쪽 | 1만4000


그러나 누구나 립스카같이 드문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내가 직접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다.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은 아들 모건이 자폐아라는 사실을 처음에는 부정하던 콜린스가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문학역사가인 그는 역사적 기록들을 조각조각 배열하고 그걸 추론해 문학 작품을 써온 자기만의 방식을 활용해 모건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1700년대 독일의 한 숲속에서 들짐승 같은 모습으로 발견돼 인간 사회에 섞이길 끝까지 거부한 ‘야생소년 피터’의 이야기에 이상하게 끌린 그는 피터의 흔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콜린스는 자신이 왜 유독 피터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피터가 “역사적으로 오래전에 나타난 자폐증의 한 사례”라는 한 학자의 소견을 발견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닫는다. 그리고 아들이 자폐증이란 사실을 받아들인다.

이 책은 해독해야 할 암호와도 같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애쓰는 아버지의 기록이자, 나와는 다른 한 존재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한 사람의 기록이기도 하다. 콜린스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 피아니스트 굴렌 굴드, ‘얼스우드 정신병원의 천재’ 제임스 풀렌, 공과 컵을 가지고 하는 놀이를 만들어내서 공을 666666번 잡을 때까지 쉬지 않고 그 놀이를 했다는 수학자 존 프랜셤 등의 이야기를 찾아 헤매며 결국 “자폐의 스펙트럼”을 길게 늘여놓으면 여러 역사 속 인물들은 물론이고 콜린스 자신과 아내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흔히 자폐의 증상이라고 하는 수집벽, 정리벽, 활자중독증, 예민한 신경은 누구에게나 조금씩 있다. 그는 “자폐인 스스로도 자폐인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는 외계인으로 묘사하곤 하지만,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라는 결론에 이른다. “자폐인은 곧 우리이고, 자폐인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이해해가는 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6년 <네모난 못>이란 제목으로 이미 출간된 바 있지만, 당시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보다 더욱 척박했던 자폐인에 대한 인식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가 ‘혐오시설’ 취급을 받고, 조현병 환자들이 ‘잠재적 범죄자’로 매도되는 지금 역시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크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을까.

<틀렸다고도 할 수 없는>을 번역한 홍한별 역자의 말처럼 “자폐의 스펙트럼을 길게 펼쳐놓으면 우리도 반드시 그 띠 안의 어딘가에 존재한다”. 정신질환도 마찬가지다. 립스카는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정신질환을 야기한 전두피질은 우리가 노년기에 접어들 때 흔히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영역 중 하나다. 만일 내가 오래 살아서 노년기에 도달한다면 그 시기에 겪었던 것과 똑같은 정신적 변화들을 모두 다시 경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말이지 아이러니 아닌가.”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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