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커버스토리] 의전공화국 (2017. 6.2)

사회

by 정소군 2022. 3. 15. 14:09

본문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오찬에 앞서 직접 상의를 벗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이 새로 선출된 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게 무엇일까.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손이 시릴까봐 현충원 방명록에 미리 핫팩까지 끼워놓고, 노인복지관을 방문한 황교안 전 총리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대기해놓는 바람에 노인들은 계단을 걷게 한 ‘과잉의전’이 사라졌다.

 

이제 대통령은 직접 커피를 준비하고, 스스로 재킷을 벗어 의자에 걸어놓는다. 참모들과 상하 구분 없는 토론을 하기 위해 회의실 책상은 원탁 테이블로 바꿨다. 지난달 17일 국방부를 방문했을 땐 전용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찌 보면 ‘당연한’ 행동들에 국민들은 감동했다. 그만큼 우리가 권위적인 정치인과 직장 상사, 조직, 사회문화에 찌든 일상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사소한 부분까지 의전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단둘이 식당에서 만나도 어느 쪽 자리가 상석인지 신경을 써야 한다. ‘부장님’이 점심 약속 없으면 식사를 함께해주기 위해 일정을 비우는 사람들도 있다. 상사와 함께 다닐 땐 엘리베이터 버튼이라도 먼저 눌러야 할 것만 같다.

 

지난해 11월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차량이 KTX 오송역 시내버스 정거장에서 승객을 태우려고 서 있는 버스를 쫓아내고 정차해 있는 모습.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캡처

 

경향신문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e메일로 의전에 얽힌 독자들의 다양한 사연들을 받았다. 대부분 ‘절대 익명’을 요구하면서도 “이제 이런 의전은 사라져야 한다”며 경험담을 풀어냈다. 에펠탑을 보며 조깅하고 싶다는 부사장의 로망을 위해 직원 10명이 달라붙어 파리 도심의 호텔 스위트룸까지 천근만근의 러닝머신을 운반했던 경험부터, 암묵적인 룰에 따라 구내식당에서 팀장 몫까지 식판을 채워 가져다주다 팀장이 싫어하는 반찬을 담아와 주의를 받은 경험까지.

의전은 원래 국가 간의 예우를 위한 외교 쪽 용어였지만 이것이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기업 총수는 물론 부장과 팀장에 이르기까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특별대우를 바라는 일종의 ‘갑질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전문가들은 ‘의전공화국’이 된 한국 사회의 원인을 뿌리 깊은 권위주의에서 찾는다. 의전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권력을 가진 자들이고, 그들이 자신에게 얼마든지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갑질’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누가 시키든 시키지 않든 알아서 ‘과잉의전’을 하게 되는 구조란 것이다. 이 구조를 깨려면, 의전을 받는 자들이 먼저 권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대통령이 교체됐다. 이제 우리의 일상도 달라져야 한다.    / 정유진·홍재원·김지윤 기자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