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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자리 배치·도착 시간·연설 순서 놓고 신경전 벌이는 ‘의전의 기술’ (2017.6.2)

사회

by 정소군 2022. 3. 15.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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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애매하면 식당 주인 지시대로
의전서열 정리 어려울 땐 ‘대독’
시간 맞춰 운전 속도·경로 등 조정

 

 

의전이 체계화된 사회일수록 권위와 위계를 재생산하기 쉽다. 권력과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과시할 수 있는 방식이 의전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자리 배치나 순서 등 사소한 의전을 둘러싸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복잡한 ‘의례’가 돼버린 의전의 세계를 소개한다.

■ 상석의 비밀

금융 관련 행사가 자주 열리는 은행연합회 건물 16층 ‘뱅커스 클럽’은 의전 담당 직원들을 종종 고민에 빠뜨리는 레스토랑이다. 금융권 관계자 ㄱ씨의 말이다. “답사를 가보니 거기 방들이 애매해요. 양쪽 코너 방인 ‘비비추’와 ‘노루귀’는 상석이 어딘지 헷갈리게 돼 있어요.”

 

통상 상석은 문과 멀리 떨어진 안쪽 가운데 자리다. 그러나 그쪽에 창문이 있고 경치가 좋을 땐 문 앞쪽이 상석이 된다. ‘애매한 방’은 그래서 나온 말이다. 창문이 안쪽에 있긴 한데, 문 앞쪽 자리를 상석으로 만들 만큼의 경치는 아니라서 애매하다는 것이다. 이럴 땐 식당 주인의 지정에 따른다. “식당 측이 ‘안쪽이 상석’이라고 하더라고요. 거기에 따라 보고서를 만들었죠. 음식이 상석부터 나오니까요.”

 

■ 대독의 비밀

 

의전의 신경전은 주로 자존심 문제에서 비롯된다. 비슷한 ‘급’의 수장은 기관을 대표하므로 좌석이나 연설 순서에서 밀리지 않으려 한다. 예를 들어, 국가 의전서열에 차관급은 따로 명시되지 않는다. 만약 기획재정부 차관과 금융감독원장이 행사에 참석하면 누구를 더 예우해야 할까. 행사를 주최하는 입장에선 어느 한쪽을 홀대했다간 뒤탈이 두렵다. 이럴 땐 통상 기재부 차관을 선순위로 두되 ‘장관 대신 참석’ 형식으로 해서 연설도 ‘대독’하도록 하면 무난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좀 심하게 말하면, ‘대독’은 의전서열 때문에 나온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 운전의 디테일

 

의전을 맡고 있거나 맡아본 이들은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자연스러운 동선’을 꼽는다. 약속시간에 늦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빨리 도착해서 기다리게 하는 것 역시 낭패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의전을 맡은 수행비서 등은 운전기사와 평소 친분을 쌓고 호흡을 맞춰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너무 일찍 도착할 것 같으면 수행비서가 운전기사에게 ‘천천히’ 신호를 준다. 그러면 일부러 신호등 빨간불에 걸리는 식으로 도착시간을 슬쩍 조정한다. 목적지 근처에서 건물 주변을 한두 바퀴 도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늦었다 싶으면 ‘과속딱지는 내가 책임질 테니 밟으라’는 신호를 준다. 의전을 받아본 사람들 대부분은 차가 갑자기 이상하게 움직여도 왜 그러는지 알기 때문에 그냥 모른 척한다.

 

그렇다면 늦지도 이르지도 않게, 딱 제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상대방이 늦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재계 관계자 ㄴ씨는 회장이 ‘지루하다’거나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늘 보고거리 하나쯤은 챙겨둔다고 했다. “회장님, 상대편이 차가 막혀 조금 늦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잠시 따로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도착할 때까지 회장이 관심을 가질 만한 업무보고를 간단히 진행한다. ㄴ씨만의 비법이다.    / 정유진·홍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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