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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투표법 충돌은 이제 시작일뿐...'하나의 미국'은 꿈이었나 (2021.6.1)

국제뉴스/남북 아메리카

by 정소군 2022. 4. 14.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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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이 장악한 텍사스 주의회에서 유색인종 투표권에 큰 제약을 가하는 투표법 개정안이 통과 직전까지 이르렀다가 민주당 의원들이 전원 퇴장이라는 초유의 강수를 둔 끝에 결국 부결됐다. 하지만 공화당은 “곧 특별회기를 열어 다시 법안 통과를 성사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같은 갈등은 텍사스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일이 아니다. 애리조나, 조지아 등 공화당 성향의 14개 주가 비슷한 내용의 투표법 개정안을 이미 통과시켰고, 다른 18개 주에서도 통과가 추진되고 있다.

공화당은 투표법 개정안에 현대판 ‘짐 크로 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 선거를 막기 위해 필요한 절차를 강화한 것 뿐”이라고 주장한다. CNN은 최근 설문조사 결과, 공화당 지지자의 절반 이상은 아직도 2020년 미 대선이 ‘사기 선거’였다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하나의 미국”을 강조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쪼개고 간 두 개의 미국은 지금도 여전히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첩보작전 방불케 한 텍사스 투표법 저지 과정

31일(현지시간) 140일간의 텍사스 주의회 회기를 마치는 총회에서 하원의장인 데이드 펠런 공화당 의원은 “우리는 곧 돌아올 것이다. 언제인지는 몰라도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텍사스트리뷴이 보도했다. 이는 조만간 특별회기를 열어 투표법 개정안 통과를 다시 시도하겠다는 의미다.

텍사스 주 하원은 전체 150석 중 공화당이 83석으로 과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이 법안은 이미 상원에서 통과돼 하원에서의 투표 만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전날 민주당에게 허를 찔리면서 표결에 실패하고 말았다.

법안 통과를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민주당 의원들은 한창 의회가 열리고 있던 도중인 전날 밤 1030분쯤 “조용히 회의장을 떠나라. 로비에 모이지 말고 아예 건물 밖으로 나가라”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하나 둘 비밀스럽게 회의장을 떠나기 시작했다. 공화당은 어느새 회의장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법안 통과에 필요한 최소 정족수인 100명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결국 정기회기 시한인 자정 직전에 법안 통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싹 약이 오른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의회를 보이콧한 민주당 의원들은 의무를 저버린 것”이라면서 “이들에게 봉급을 지급하지 않겠다. 어디 한번 지켜보라”는 트위터를 올렸다.



도대체 어떤 법이길래

텍사스주는 지난 해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둑맞은 표를 되찾아야 한다며 가장 열심히 투쟁했던 곳이었다. 그런만큼 이들이 내놓은 투표법 개정안은 다른 공화당 성향의 주들과도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유색인종의 투표를 가로막고자 하는 의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지아주와 플로리다주도 새로운 투표 제한법안을 통과시켰지만, 29일 텍사스주의 선거법을 2개 주의 것과 비교해본 바이든 대통령이 “이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다”라고 혹평했을 정도였다.

사전투표를 갖가지 방식으로 제한하고 있는 이 법은 먼저 사전투표소 24시간 개방과 드라이브 스루 투표 방식을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두 가지 투표방식은 텍사스주에서 민주당 세력이 가장 큰 해리스 카운티가 지난해 대선 때부터 도입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대선 당시 해리스 카운티에서 드라이브 스루 방식으로 투표를 한 사람은 13만명, 24시간 개방 투표소에서 사전투표를 한 사람은 1만명에 달한다. 이들의 50% 이상이 유색인종이었다. 흑인과 히스패닉의 전체 대선 투표 참가율이 38%였던 것에 비춰볼 때, 이 두 가지 제도가 유색인종의 투표율을 끌어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법안은 일요일 오후 1시 이전에 투표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지난해 대선 당시 교회에 다니는 흑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난 후 함께 투표하러 갔던 것을 방해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심지어 친인척 사이가 아닌 사람 2명 이상을 차에 태우고 투표소로 오려면 미리 투표 보조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역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한 차로 이동해 투표하러 오는 것을 겨냥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 규정은 자차가 없어 이동이 어려운 유색인종이나 저소득층을 밴에 태우고 투표소로 데려오는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점점 더 멀어져 가는 ‘하나의 미국’

이처럼 노골적인 ‘유색인종 투표 방해법’이 텍사스주에서 통과 직전 상황까지 놓이자 연방의회의 민주당 의원들은 “우리도 가만히 있어선 안된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한다”며 필리버스터라도 폐지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연방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은 사전투표를 최소 연속 15일간 실시하고 우편투표 신청을 확대하는 내용의 투표권 확대법을 통과시킨 상태다. 하지만 공화당이 반대하고 있어 민주당과 공화당이 50  50으로 의석을 양분하고 있는 상원에서는 필리버스터의 벽에 부딪쳐 통과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

CNN 30일 정치분석 칼럼에서, 공화당 지지자의 23%가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의 주장을 신봉하고 절반 이상이 2020년 대선이 사기극이라는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거론하면서 “정당이 아닌 ‘미국’을 선택해 달라는 바이든 대통령의 호소와 초당적인 협력 하에 정국을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던 그의 약속이 얼마나 순진했던 것인지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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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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