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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나’를 찾아 헤매지만 그런 건 없어…장자 화두도 답이 없죠”

by 정소군 2022. 3. 22.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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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원고지 1만2000장 ‘에세이 장자’ 내놓은 시인 고형렬
ㆍ‘소요유’부터 ‘응제왕’까지 7편의 원문 번역·해설에 꼬박 15
ㆍ“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 했지만 장자는 ‘나를 잊으라’ 해”



시인 고형렬(65)은 2004년 창비 편집부장을 그만둔 뒤 경기 양평의 외딴 마을로 내려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돼 있는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혼돈의 세계”인 장자에게로 돌아갔다.

그는 장자와 함께 시골에 파묻혀 보낸 지난 15년 동안 8000행에 이르는 장시 ‘붕새’를 토해낸 후 즉시 불태워 하늘로 돌려보냈으며, 원고지 1만2000장에 달하는 <에세이 장자>(에세이스트·전 7권·사진)를 홀린 듯 써내려 갔다. 다행히 <에세이 장자>의 원고는 불태워지지 않고 최근 책으로 출간됐다.

지난 5일 경기 양평에서 만난 그는 평생의 화두가 된 장자와 처음 만난 때가 스무 살 무렵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훨씬 나이 어린 순간부터 그는 이미 장자의 사상에 이끌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어린 고형렬은 어디선가 주워들은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종이에 써서 들고 다녔다. 어느 날, 바닷가에 홀로 서서 ‘유애(有涯)’란 글씨를 한번 보고 먼바다를 응시하다가 다시 또 ‘유애’를 들여다보곤 했는데, 돌연 아버지가 나타나 물었다. “그건 뭐냐?” 안 보이려고 애를 쓰다가 결국은 아버지에게 카드를 보이고 나서, 그는 한동안 부끄러워 아버지를 피해 다녔다고 한다.

유애. 태어난 모든 것은 죽는다. 있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무애로 돌아간다. 그것만이 진리다. 하지만 왜 그 어린 소년은 일찍부터 그런 허무함에 눈을 뜨게 된 것일까.

그의 고향인 강원도 사진리(지금의 고성군)는 원래 38선 이북의 땅이었지만, 한국전쟁 후 이남이 된 땅이다. 이쪽의 입장에서 보면 ‘수복’이고, 저쪽의 입장에서 보면 ‘실지’이다. 그는 “나는 내 고향이 당당한 뿌리를 가진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역사도 잘 모르는 어린 나이였으니 그 당시 나에겐 그 감정이 수수께끼처럼 느껴졌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부터 분단의식이 생긴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에 진학 하는 대신 공무원 시험을 봐 면서기가 됐다. 그가 부임한 강원도 현내면은 공교롭게도 마을을 가로지르는 군사분계선으로 두 동강 난 곳이었다. 장자의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다. 그는 곧바로 장자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어린 시절 DNA에 새겨진 분단의식 때문에 ‘경계’에 민감해진 그가, ‘나’와 ‘너’의 경계를 허무는 장자의 초월적 사상에 흠뻑 빠져들게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갖게 된 자신만의 골방에 틀어박혀 시를 쓰기 시작했고 그 시가 1979년 <현대문학>에 발표되면서 등단을 하는데, 시의 제목은 ‘장자’였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문학앨범 <등대와 뿔>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이 그 시대를 닮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 역시 1970~80년대를 관통한 도시의 광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고, 끝없는 경쟁의 시대 속에 함몰돼 갔다. 끊임없이 타자를 의식해야 하는 생활에 지쳐갈 무렵, 문득 다시 장자가 그리워졌다. 창비에 사표를 낸 후 주섬주섬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양평으로 내려왔다.

지난 5일 경기 양평에서 만난 시인 고형렬은 “결정적 세계 속에 살다보면 오히려 갈 길이 좁아진다. 장자가 던지는 화두에는 답이 없다”면서 “사실 문학이란 것 자체가 답이 없는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viola @ kyunghyang.com



모든 것을 훌훌 내려놓고 온 양평인데, 그는 이상하게 밤마다 악몽을 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가 이사 간 마을 일대가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과 인민군이 떼죽음을 당한 격전지였다고 한다. ‘경계’와 ‘분단’의 냄새에 유달리 예민한 그의 오감은 “알 수 없는 공허감” 속으로 다시 그를 밀어 넣었고, 그는 열병을 앓듯 장시 ‘붕새’를 써내려갔다.

<장자>에 나오는 붕새는 ‘혼돈’이 죽은 황폐한 땅에서 태어난다. 성냥개비만 한 물고기 ‘곤’은 거대한 새가 되어 무한히 높은 하늘로 올라가며 소멸한다. 그는 완성된 시를 50권만 출판해 지인들에게 나눠준 후 불태워버렸다. ‘자기소멸’을 위한 일종의 제의였다.

“혼돈의 존재인 붕새의 핵심은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사람은 눈, 뇌 혹은 심장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너풀거리는 지느러미일 수도 있고, 그 지느러미를 부드럽게 밀어주는 물살일 수도 있어요. 결정적 세계 속에 살다보면 오히려 갈 길이 좁아지죠. 다들 진정한 나를 찾아 헤매지만, 끝없이 찾아봐도 그런 건 없어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지만, 장자는 다릅니다. ‘나를 여의어라’, 즉 ‘나를 잊으라’고 하죠.”

최근 출간된 <에세이 장자>는 그가 ‘소요유’부터 ‘응제왕’까지 전 7편의 원문을 1741년에 쓰여진 <남화경직해>를 원본 삼아 다시 번역하면서, 등장 인물과 서사에 대한 상상을 더해 의미를 확장해가면서 해설한 것이다. 집필을 시작해 끝내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다.

그는 장자의 책을 당나라 현종이 내린 존칭인 <남화진경>이란 책명 대신, 옻나무를 관리하는 낮은 벼슬인 ‘칠원리’로 살았던 장자를 기억하며 <칠원서>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장자에 빠져 지낸 지난 15년이 너무 즐거워서, 그 시간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을 정도예요. 지금이라도 다시 쓰면 다른 장자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자가 던지는 화두에는 답이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장자의 문장들은 현실에 아무 도움도 안되는 말들이지만, 장자 사상의 핵심이 바로 ‘무용’입니다. 사실 문학 자체가 답이 없는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과도 같죠.”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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