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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는 사이 ‘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2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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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책과함께’ 제공
ㆍ이주민에게 “한국인 다 됐네요”좋은 의도로 건넨 말일지라도 ‘온전한 한국인’의 전제 깔려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세요”수모와 모욕의 말로 들릴 수도 보이지 않는 일상적 차별들은 선명한 경계선 없이 도사려 “당사자가 돼 본 적 없는 사람이 차별의 감정을 자기 경험으로 해석하려 하면 관점이 어그러져”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창비 | 244쪽 | 1만5000


인종토크

이제오마 올루오 지음·노지양 옮김

책과함께 | 320쪽 | 1만5000


낙인찍힌 몸

염운옥 지음

돌베개 | 448쪽 | 2만원


 

혹시 ‘당신’은 억울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좋은 의도에서 건넨 말인데 그게 차별적 발언이라니. 나는 차별을 받는 쪽이면 몰라도,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닌데.

가끔은 지겨웠을지도 모른다. 왜 아직도 인종차별이니, 성차별이니 하면서 인권 타령만 하는 것일까. 필리핀 이주여성이 국회의원이 되고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시대인데, 이제는 그런 것을 뛰어넘어 계급같이 근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건설적인 논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반감을 가지게 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말이라도 꼭 저렇게 공격적으로 해야 하나. 차별과 혐오에 찬성하지 않는 나같이 평범한 사람조차 적으로 돌리는 게 도대체 누구에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차별주의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 무엇이 차별인지 눈에 잘 보이지 않고, 가끔은 반감까지 느끼게 되는 ‘당신’이 읽어보면 좋을 책 세 권이 나왔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와 <인종토크>는 별다른 악의 없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차별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전자는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인 김지혜가 한국 사회의 차별과 혐오 전반의 문제점을 다룬 책이고, 후자는 흑인 여성 작가인 이제오마 올루오가 자신이 겪은 미국 내 인종차별에 대해 쓴 책이지만 두 책은 많은 지점에서 맞닿아있다. 나머지 한 권은 도쿄대에서 우생학을 공부한 염운옥이 쓴 <낙인찍힌 몸>이다. 인종에 대해 폭넓게 고찰한 이 책은 특히 피부색만이 아니라 종교·사회·문화적인 지표와 결합하면서 외연을 확장해 가는 ‘신인종주의’ 현상에 주목한다.

■ 이런 것도 차별이라고요?

한국에 사는 이주민에게 “한국인 다 되었네요”라고 말하는 건 칭찬일까. 말한 사람은 분명 낯선 나라의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격려 차원에서 건넨 말이었을 것이다. 이 말이 차별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당사자에게 물어보면 된다. 김지혜는 “이주민들은 한국인이 ‘다 되었다’는 말에, 자신이 아무리 한국에서 오래 살아도 우리는 당신을 온전히 한국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에 모욕적으로 들린다고 했다”고 설명한다.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고 여겨진다면, 한번 입장을 바꿔보자. 영화 <스파이더 맨>의 주인공인 톰 홀랜드가 몇년 전 홍보차 방한했을 때 미국 시민권자인 한국인 리포터에게 “영어 잘한다. 어디서 배웠느냐”고 물어 논란이 인 적이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흑인 리포터에게 “영어 잘한다”고 칭찬한 전력이 있다. 올루오는 유색인종에게 가해지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차별)의 사례 중 하나로 “와, 영어 잘하시네요”라는 말을 꼽는다. 이 말은 유색인종은 영어권 국가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동등한 시민이 될 수 없고, 영어는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편견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화자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상관이 없다는 점이다. 올루오는 자신이 매장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는 백인 점원의 예를 든다. 그 점원은 올루오가 흑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인종과 상관없이 모든 손님이 물건을 훔칠 거라고 의심해서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올루오는 “그렇든 아니든 결국 그 점원은 자신의 백인 정체성을 이 상호작용에 끌어들여온 것”이라고 말한다. 백인인 점원은 흑인인 올루오와 달리 쇼핑할 때마다 직원이나 경비원이 자신 옆에 딱 붙어 쫓아다니는 경험을 한 적이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가 따라다닐 때 올루오가 느끼는 감정을 모른다. 따라서 그 점원의 의도와 상관없이 올루오는 이것을 인종 문제로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별의 당사자가 돼 본 적 없는 사람이 흑인(장애인, 여성, 이주민)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통해 해석하려 하면 관점이 어그러진다.”

■ 지금은 21세기인데, 사소한 차별에 왜 그리 공격적이죠?

책과함께 제공



흔히 사람들은 ‘인종차별’ 하면 KKK같이 극악한 사례만 떠올리고, ‘성차별’ 문제를 제기하려면 참정권을 박탈당한 서프러제트 정도는 돼야 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지금의 차별은 사소하다 못해, 오히려 진짜 문제는 ‘역차별’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어쨌든 지금은 필리핀 이주여성인 이자스민이 국회의원이 되고, 여성 대통령까지 탄생한 21세기 아닌가.

그러나 고위 공무원 중 여성의 비율이 아직도 5.2%에 불과하다는 점은 잘 보이지 않는다. 김지혜는 “객관적인 지표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여성이 ‘평균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은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다”며 “반면 여성이 대통령의 지위를 갖거나 남성이 많은 직업군에 있으면 쉽게 가시화되기 때문에 그 수가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젠더와 인종을 넘어 좀 더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이런 착각에서 비롯된다.

올루오의 한 백인 남성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제 인종 말고 계급에 대해 말하면 안될까? 하층 계급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면 소수 인종들의 삶도 함께 개선할 수 있는 거니까.” 올루오는 그에게 이렇게 설명해준다. “너는 왜 흑인들이 가난하다고 생각해? 백인들과 같은 이유일까? 나는 말이야, ‘흑인스러운’ 이름을 갖고 있으면 서류 전형에도 통과하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거든. 내가 일을 구하지도 못하는데 최저임금 인상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어그레션의 특성은 가해자와 피해자 인식의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장애인에게 “희망을 가지세요”라고 말하는 식의 일상적인 수모와 모욕은 수시로 일어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마이크로어그레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알아챘다 하더라도 사소한 실수 정도로 여긴다. 마이크로어그레션 하나하나는 큰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올루오는 이렇게 비유한다. “딱 한번 벌에 쏘이는 건 그다지 엄청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를 벌들에게 평생 매일 쏘일지도 모른 채 살아가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이크로어그레션을 저지르는 사람은 늘 다르다. 그들은 각자 한번씩만 공격하는 것이지만 당하는 개인은 하나하나 대응하기 너무 힘들다. 마이크로어그레션에 반복 노출되는 소수자들은 자신이 ‘열등하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반복 주입됨으로써 우울증이나 불안장애까지 얻는다.

■ 나는 약자인데 어떻게 차별을 해요?

한 개인은 성별이나 인종으로 인한 지위 외에도 수많은 “다중적 지위의 복합체”이다. 대한민국 국민-여성-이성애자-정규직-대학 졸업자-기독교 등 수많은 분류기준에 따라 여러 차원의 집단에 동시에 속하게 된다. 성별의 기준에서 보면 약자인 여성이지만, 정규직이라는 고용형태로 놓고 보면 기득권자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특권보다 자신이 당하는 피해에 더 민감하다. 그래서 중첩된 정체성 중 약자로서의 정체성에 편향되는 경향을 보인다.

김지혜는 예멘 난민 사태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당시 사람들이 예멘 난민 수용을 반대한 주요 이유 중 하나는 “여성에 대한 성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많은 여성들이 무슬림이란 단어로 연상되는 성차별적이고 폭력적인 ‘남성’과 그 잠재적 피해자인 ‘여성’의 구도로 이 상황을 바라봤다. 하지만 과연 ‘무슬림 난민 남성’이 ‘한국 국민 여성’보다 더 큰 권력을 가졌을까.

난민 반대집회에 등장한 “국민이 먼저다”란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 여성은 “소수자 집단인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주류 집단인 국민으로서 권력을 행사했다”. 김지혜는 “여성이 주류 집단이라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서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이 달라지는데 우리는 한곳에만 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 나는 무슬림이 싫을 뿐, 인종주의자가 아니에요

책과함께 제공



‘단일민족’이란 신화 속에 살아온 한국인에게 ‘인종차별’ 문제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나 백인들의 흑인 차별은 인종주의라고 인식하지만, 새로운 형태의 인종주의인 무슬림에 대한 차별이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은 인종주의라고 인식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200만명이 넘는 외국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인종이 일상과 사회제도 속에 기입되는 인종화 과정”은 현재진행 중이다. 염운옥은 “최근까지도 한국에서 이민자에 대한 태도는 접촉 경험의 절대적 부족에서 오는 제노포비아에 가까웠다”며 “하지만 다인종, 다민족 사회로 진입하면서 막연한 공포감인 제노포비아가 인종주의라는 구조화된 악으로 전환되어 가고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피부색에 출신국의 경제적 지위가 더해져 발생한다. 특히 결혼이주여성에게는 성차별과 인종차별이 교차하며 가해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에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돈 주고’ 사온 ‘가사노동력’ 취급을 당하며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기도 한다. 특히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이슬람포비아 역시 빠르게 확산돼 가고 있다. 사실 무슬림은 종교적 분류일 뿐 인종적 분류가 아니다. 그러나 염운옥은 ‘제2의 피부’라고 할 수 있는 의복과 관습 같은 문화적 지표와 결합해 무슬림이 ‘인종화’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처제인 로렌 부스는 2010년 무슬림으로 개종한 후 히잡을 착용하기 시작했다. 무슬림 복장을 채택하자마자 그에게는 즉시 백인으로서의 특권이 박탈됐다. 택시운전사는 영어 못하는 외국인을 대하듯 “어-디-가-세-요?”라고 물었고, 사람들은 “지하드하러 가세요?”라는 농담을 지껄인 후 불쾌해하는 그에게 “이봐요, 당신들 무슬림은 왜 그리 유머감각이 없어요?”라고 마이크로어그레션을 하기 시작했다. 제주 예멘 난민 사태 당시 인터넷에 달린 “저는 인종주의자는 아니지만… 무슬림은 좀 위험하잖아요” 같은 댓글들은 무슬림의 인종화가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렇듯 차별과 혐오는 보이지 않지만 일상적으로, 선명한 경계선 없이 중첩적으로 발생한다. 김지혜는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차별을 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다만 차별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차별과 혐오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큰 지름길은 “내가 차별하지 않을 가능성은, 사실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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