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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하면 ‘진화’였는데, 그가 말한 게 아니었네

by 정소군 2022. 3. 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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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종의 기원’ 초판 번역본 출간
ㆍ개정판 대부분 세간 비판 대응용…당대 철학자 스펜서 입김도 작용
ㆍ초판에 다윈 독창성 가장 잘 담겨



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한국을 ‘다윈 후진국’이라고 표현한다. 해외에서 다윈은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빠짐없이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 교수는 “만약 국내에서 그 같은 설문조사가 실시된다면 100위 안에도 들지 못할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다윈 탄생 200주년인 동시에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었던 2009년에 즈음해 국내의 진화학자들이 ‘다윈포럼’을 만든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무엇보다 다윈의 책을 제대로 번역해 내놓는 일이 급선무”라고 의기투합했다. 몇몇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있기는 했지만, 정확하면서도 일반 독자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번역 정본’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첫번째 결실이 이번에 출간된 <종의 기원>(사이언스북스) 초판 번역본(사진)이다. 진화학자이자 생물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번역했고, 최 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이제까지 국내에 나온 번역본은 대개 6판 번역본이었다. 개정판일수록 완성도가 높으니 더 좋은 것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다윈이 <종의 기원>을 쓸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렇게 볼 일은 아니다. 다윈은 당대 학자들의 반응과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1859~1872년 사이 판본을 무려 다섯번이나 바꿨다. 예컨대 2판에서는 책의 마지막 문장에 “창조자에 의해”라는 구절을 삽입, 종교적 반감을 최소화하려 했다. 오늘날 다윈의 진화론 하면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부터 떠올리지만, 사실 ‘적자생존’이란 용어는 당대의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5판부터 등장한다.

‘진화’(evolution)라는 용어도 원래 다윈의 것이 아니었다. 이 책을 번역한 장 교수는 서문에서 “다윈은 ‘진보’(progress)란 뜻을 함축하고 있는 ‘진화’란 표현을 쓰지 않고 줄곧 ‘변화를 동반한 계승’이란 용어를 썼다”면서 “다윈은 6판에 가서야 ‘진화’란 용어를 쓰는데, 이 역시 스펜서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스펜서는 ‘적자생존’ 개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해 훗날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원흉으로 몰린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다윈포럼’이 초판 번역을 택한 것은 다윈의 독창성과 과감함이 초판에 가장 잘 담겨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들의 다윈 선집은 계속 이어진다. 올해 가을엔 김성한 전주교대 교수가 번역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이, 겨울에는 세계적 진화학자들을 최 석좌교수가 인터뷰하고 정리한 <다윈의 사도들>이 출간될 예정이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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