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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은 장벽이 되고> 저자 프란시스코 칸투 "미국 국경의 비인간성 알리고 싶었다"

by 정소군 2022. 3. 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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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서로 꼭 껴안고 강을 건너다 익사한 채 발견된 엘살바도르 불법이민자 아빠와 2살 소녀 발레리아의 사진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들 부녀는 미국 국경순찰대의 눈을 피하기 위해 목숨 걸고 강을 건너는 쪽을 택했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다. 지금 미국과 멕시코 사이 국경은 죽음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준 전시상태’에 놓여있다.


<선은 장벽이 되고>(서울문화사)는 중남미 불법 이민자들을 쫓아내는 일을 담당했던 한 미국 국경순찰대원의 고백이 담긴 책이다. 황무지에서 밀입국자의 생명줄인 물병을 베어 땅에 쏟아버리고, 열사병과 탈수증으로 쓰러져 죽은 이민자들의 사체를 거두는 일을 하던 프란시스코 칸투는 이민자들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국경지대의 실상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순찰대원을 그만둔다.

이 책은 한국을 포함해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대만 등 7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소개됐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칸투는 지난달 3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국경지대의 특수한 상황을 담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여 놀랐다”면서 “중동 난민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이나 비무장지대(DMZ)로 남북이 갈라져 있는 한국 등 모든 나라들은 각자의 상황에 따른 국경 이슈를 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에 살고 있는 프랑스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며칠 동안 제주도에 머물다 올라온 참이었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서 첨예한 이슈가 됐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에 대해서도 친구에게 들어 알고 있다고 말했다. 마침 친구의 지인 중 한명이 당시 예멘 난민에게 숙소를 제공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단일민족으로 살아왔던 한국은 이민자나 난민에 대한 거부감이 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들은 이민자나 난민에게 여자를 강간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갱단’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내가 순찰대원으로 일하면서 마주한 그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중남미의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미국 국경순찰대로 일했던 프란시스코 칸투는 자신의 경험을 고백한 <선은 장벽이 되고>란 책을 통해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폭로했다. 지난달   31 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 @ kyunghyang.com


- 책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가 순찰대원으로서 했던 행동의 의미를 스스로 되새기고 정리해보기 위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순찰대에 들어간 것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만큼 국경의 현장을 경험하고 싶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내가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상상조차 못했던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2012년에 순찰대를 그만뒀는데, 트럼프 정부 이후 국경 문제는 더욱 악화됐다. 이 책을 통해 미국 국경의 현실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 책이 나온 후 미국 내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트럼프 지지자는 물론이고, 의외로 반트럼프 진영 일각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국경순찰대로서 저질렀던 잔혹한 행동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은 책 아니냐는 오해도 받았다. 가해자의 고백이 아니라 피해자의 증언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 지적에는 나도 동의한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혹한 대우로 고통받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그것 역시 이 책을 쓴 의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당신을 포함해 국경순찰대원의 절반 이상이 아직도 멕시코에 친인척이 살고 있는 히스패닉이란 사실이 놀라웠다.

“중남미에서 온 불법 이민자를 쫓아내고 가두는 사람들은 모두 백인일 것이라는 흑백논리로 이 문제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국경지대의 상황은 매우 복잡하다. 히스패닉이 많이 사는 국경 인근 마을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 국가공무원직인 순찰대원은 이곳에서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자리다. 히스패닉 순찰대원들에게는 민족적인 정체성보다 미국 시민권자로서의 정체성이 우선한다. 본인은 정당한 방법으로 이 나라에 들어와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11 월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국경순찰대가 발포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는 온두라스 모녀의 모습. 기저귀만 찬 어린아이 둘이 비틀거리며 어머니를 따라 뛰고 있다. 이 사진은 “이민자들의 절박하고 슬픈 모습을 생생하게 담았다”는 평을 받으며 지난 4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당신은 국경지대가 군사지역화(militarization) 되고 있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이 바로 트럼프가 원하는 바가 아닌가 싶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트럼프는 DMZ를 가리키며 “누구도 통과할 수 없는 이곳이야 말로 진정한 국경”이라 말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한국의 ‘완벽한 국경’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한 상흔의 결과 아닌가. 그는 ‘잘못된 판타지’를 갖고 있는 듯 하다. 나는 미국 국경지대에서 한시간 거리 마을에 살고 있는데, 마치 준 전시상태에 놓여진 느낌이다. 수시로 신분증 검사를 당해야 하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마다 매 순간 감시 카메라에 사진이 찍힌다. 관제탑은 고속도로를 오가는 모든 차량을 모니터링하면서 분석한다. 사막 지역으로 피크닉이라도 갈라치면 하늘에서 헬리콥터가 날아다닌다. 만약 뉴욕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들이 과연 가만 있을까. 이곳은 버려진 땅과 마찬가지다. 트럼프 정부에게 (주류 백인이 많이 살지 않는) 국경지대에서 일어나는 일은 미국의 일이 아닌거다. 국경지대의 군사지역화는 미국의 자연 환경마저도 장벽으로 만들고 있다. 강으로 내몰린 엘살바도르 부녀의 죽음에서 드러난 것처럼, 강이나 사막같은 단순한 자연 풍경이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몰아내기 위한 도구로 쓰여진다.”

- 엘살바도르 부녀의 사진이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반이민 정책 지지자들은 “동정심과 현실은 냉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0년 이후 현재까지 미국 국경지대에서만 최소 7000명 이상의 이민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지난 몇년 간 어린아이와 여성이 포함된 가족 단위의 불법 이민자가 급증했지만, 관련 법은 불법 이민자 대다수가 성인 남성이었던 1990년대 이후 현재까지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어린아이들이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세워진 수용소에서 참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이 법이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은 것은 불법이민자들을 ‘인간’으로 여기지 않는 무관심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큰 우선순위는 ‘누구도 더 좋은 삶을 찾아 왔다는 이유만으로 국경지대에서 죽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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