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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정신생활은 인간과 다를 뿐, 열등하지 않다 [책과 삶]

by 정소군 2022. 3. 22.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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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
ㆍ프란스 드 발 지음·이충호 옮김
ㆍ세종서적 | 468쪽 | 1만9500

죽음을 앞둔 노쇠한 동물원 침팬지 ‘마마’가 자신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러 우리 안에 들어온   80 세 생물학자를 보자 환하게 웃으며 포옹하기 위해 목을 끌어안고 있다. 얀 판 호프 유튜브 캡처



그것은 ‘마마’가 59세가 되기 한 달 전이었다. 노쇠하여 죽음을 앞둔 마마는 선잠에 빠져 있었다.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깨어난 마마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오랜 친구 ‘얀’의 모습을 확인하자 기쁨에 넘쳐 이빨을 드러내고 씩 웃었다. 그리고 긴 팔로 친구의 목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겨 포옹을 했다. 이 평범한 순간이 많은 이들에게 큰 감동을 준 이유는 ‘마마’가 세상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물원 침팬지이고 ‘얀’은 80번째 생일을 두 달 앞둔 생물학자 얀 판 호프, 즉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평생 동안 얀은 마마와 수없이 많이 만났지만, 모두 철창을 사이에 둔 채였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른 침팬지가 있는 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침팬지는 힘이 인간보다 월등히 강한 데다 변덕스러운 동물이어서 한 공간에 있어도 안전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를 키운 사람뿐인데 얀과 마마는 그런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둘은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다. 죽음을 앞둔 마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었던 얀은 용기를 내어 철창 안으로 들어갔다. 마마는 얀이 느낀 두려움을 감지했는지 마치 괜찮다는 듯 손가락으로 얀의 머리와 목 뒤쪽을 리드미컬하게 톡톡 두드렸다. 침팬지가 낑낑거리는 새끼를 달랠 때 흔히 사용하는 위로의 제스처이다. 얀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알려준 것이다. “마마는 얀이 자신을 보러 와서 행복했다.”

전작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동물의 지능을 탐구한 저자는 자신의 오랜 친구 얀과 마마의 포옹에서 영감을 받아 이번에는 동물의 감정을 파고들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얀을 보고 반가워하는 마마에 대해 놀라움을 표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동물의 감정적, 정신적 능력을 얕잡아본다는 증거”라고 지적한다. 침팬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침팬지가 얼굴 인식능력과 장기 기억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니 마마를 보고감탄하는 것은 “우리가 해외에서 1년 살다가 돌아와 옆집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이웃이 환하게 맞아주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동물을 본능과 단순 학습에 따라 행동하는 자극-반응 기계로 간주하는 경우가 많다. ‘동물의 의인화’를 피하려 하는 과학자들은 동물에게 인간과 다른 중립적인 용어를 써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동물은 ‘친구’가 아니라 함께 어울리는 무리 중 선호하는 상대가 있을 뿐이며, 동물의 ‘웃음소리’는 소리로 내는 헐떡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최근 수십년간 동물 역시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음이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음에도 여전히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동물이 인간보다 열등하며 자유의지가 없다고 생각한 아리스토텔레스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자연을 서로 먹고 먹히는 살벌한 장소로 묘사하는 사회생물학 이론들은 동물의 모든 행동을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른 이기적 유전자로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동물들도 공정성, 수치심, 분노, 혐오 등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보노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던 한 인지연구소는 과제를 잘 수행한 보노보 ‘판바니샤’에게 보상으로 우유와 건포도를 줬다. 그런데 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부러워하는 친구와 가족들의 시선을 느낀 판바니샤는 보상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판바니샤는 실험자를 바라보며 다른 보노보들 쪽을 계속 가리켰다. 그들에게도 먹을 것을 좀 주자 판바니샤는 그제야 자기가 받은 것을 먹기 시작했다. 저자는 동물도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분노를 느낄 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만 특혜를 받는 게 불공정하다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시카고대학은 쥐 실험을 하면서 두 개의 투명 용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했다. 하나는 쥐가 좋아하는 초콜릿 칩이 들어 있었고, 다른 하나에는 동료 쥐가 갇혀 있었다. 쥐는 초콜릿 칩 대신 유리병 안에 갇혀 고통스러워하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문 여는 방법을 알아내려 몸부림쳤다. 이 책은 그 외에도 물고기의 우울증, 고양이의 가짜 분노 등 동물과 인간이 감정을 공유하며 함께 진화해왔음을 보여주는 다양한 일화를 소개한다.

저자는 “동물은 각각 감각과 자연사에 적응한 자신만의 정신생활과 지능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서 “물고기의 정신생활과 새의 정신생활이 어떻게 같겠는가”라고 되묻는다. 즉 “자신의 지적 우수성에 대한 편협한 태도”로 인간만이 감정을 가진 유일한 종이라고 자만하거나, 동물의 우열을 가리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물이 감각성이 있는 존재라면 우리는 동물의 상황과 고통을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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