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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우리가 아산이고, 진천이고, 우한이다

칼럼

by 정소군 2022. 3. 22.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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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 중국에 500만달러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생각보다 좋지 않은 반응이 많았다.

“중국이 전 세계에 피해 입힌 거니까 우리가 중국에 마스크랑 돈을 청구해도 모자랄 판 아닌가” “언제까지 중국 눈치만 보는 사대주의 외교를 펼칠 것인가” “여러분, 우리 세금 60억원이 이렇게 터지고 있습니다”. 발 빠른 누군가는 청와대 게시판에 중국 500만달러 지원을 반대한다는 국민청원까지 올렸다.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 마스크를 쓰고, 예전보다 더 자주 손을 씻으며, 정부에 더욱 촘촘한 방역대책을 요구한다. 추가 확진자가 급증하고, 3차 감염자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는 반드시 필요한 경각심이기도 하다. 2015년 메르스 참사를 겪어 본 우리는 이미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방역망에 뚫린 작은 구멍 하나로도 둑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바이러스에게 국경은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이 아무리 국내 방역을 강화한들, 신종 코로나의 진원지인 중국에서 확산이 멈추기 전까지 이 사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제트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대에 우리는 숨을 곳이 없다. 국내 12번째 확진자는 일본에서 감염됐고, 16번째 확진자는 태국 여행을 다녀온 후 증세가 나타났으며, 17·19번째 확진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국에서 오는 항공기를 제한한다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방역망이 뚫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2014년 에볼라가 유행할 때 세계 각국이 감염자의 입국을 막으려는 데에만 안간힘을 쓰자,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집이 불타고 있는데 방 안에 연기가 들어오지 못 하도록 문틈에 젖은 수건만 끼우자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연기를 막으려면 불부터 꺼야 한다.

현재 매일같이 사망자와 의심환자가 폭증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심각한 의료용 보호장구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후베이성 왕샤오둥 성장은 관영 CCTV 산하 CGTN에 “현재 하루치 분량의 의료장비밖에 없는데, 재고가 거의 없고 구입할 곳도 없다”면서 “마스크와 보호복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우한시에서 76㎞ 떨어진 황강시의 일부 의료진은 보호복 대신 비옷을 착용하고 쓰레기봉투로 신발을 가린 채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의료 시스템 실패는 곧 한국의 방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발생했던 모든 전염병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다. 2014년 라이베리아에서 살던 토머스 던컨은 집 주인의 딸이 에볼라 의심 증세를 호소하자 즉시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넘쳐나는 환자로 기능이 마비된 의료센터는 응급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던컨은 집주인을 도와 택시로 여성을 병원까지 실어 날랐다. 병원은 병상이 부족하다며 이들을 돌려보냈고, 여성은 결국 귀가한 후 몇 시간 만에 숨졌다. 그리고 던컨은 며칠 후 예정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바로 미국 내에서 발생한 첫 에볼라 환자였다.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대륙을 건너 전 세계를 휩쓸 수 있다는 공포의 서막이었다. 애초에 서아프리카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던컨이 집주인의 딸을 직접 택시로 실어나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던컨이 미국에 에볼라 바이러스를 전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쯤 진정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신종 코로나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점뿐이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쓰는 동안에도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전염병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다. 5~6년 주기로 전염병 확산이 반복되는 대유행병의 시대에 인류는 모두 한배에 탄 공동운명체다. 타인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경각심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넓은 지평의 인류애를 필요로 하는 시대. 중국인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고, 지구 반 바퀴 너머 서아프리카 국민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다. 우리는 지금 선을 긋고 따지며 혐오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네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고, 내가 건강해야 우리 모두가 건강할 수 있다. 우리가 아산이고, 진천이고, 우한이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중국이 전 세계에 피해 입힌 거니까 우리가 중국에 마스크랑 돈을 청구해도 모자랄 판 아닌가” “언제까지 중국 눈치만 보는 사대주의 외교를 펼칠 것인가” “여러분, 우리 세금 60억원이 이렇게 터지고 있습니다”. 발 빠른 누군가는 청와대 게시판에 중국 500만달러 지원을 반대한다는 국민청원까지 올렸다.

알 수 없는 위험 앞에서 자기보호 본능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갈 때 마스크를 쓰고, 예전보다 더 자주 손을 씻으며, 정부에 더욱 촘촘한 방역대책을 요구한다. 추가 확진자가 급증하고, 3차 감염자까지 나온 상황에서 이는 반드시 필요한 경각심이기도 하다. 2015년 메르스 참사를 겪어 본 우리는 이미 학습을 통해 알고 있다. 방역망에 뚫린 작은 구멍 하나로도 둑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문제는 바이러스에게 국경은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이 아무리 국내 방역을 강화한들, 신종 코로나의 진원지인 중국에서 확산이 멈추기 전까지 이 사태는 결코 끝나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제트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대에 우리는 숨을 곳이 없다. 국내 12번째 확진자는 일본에서 감염됐고, 16번째 확진자는 태국 여행을 다녀온 후 증세가 나타났으며, 17·19번째 확진자는 싱가포르에서 열린 학회에 다녀온 후 양성 판정을 받았다. 중국에서 오는 항공기를 제한한다 해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방역망이 뚫릴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

2014년 에볼라가 유행할 때 세계 각국이 감염자의 입국을 막으려는 데에만 안간힘을 쓰자,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집이 불타고 있는데 방 안에 연기가 들어오지 못 하도록 문틈에 젖은 수건만 끼우자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연기를 막으려면 불부터 꺼야 한다.

현재 매일같이 사망자와 의심환자가 폭증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심각한 의료용 보호장구 부족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고 한다. 중국 후베이성 왕샤오둥 성장은 관영 CCTV 산하 CGTN에 “현재 하루치 분량의 의료장비밖에 없는데, 재고가 거의 없고 구입할 곳도 없다”면서 “마스크와 보호복 없이 환자를 받을 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우한시에서 76㎞ 떨어진 황강시의 일부 의료진은 보호복 대신 비옷을 착용하고 쓰레기봉투로 신발을 가린 채 진료를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의 의료 시스템 실패는 곧 한국의 방역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과거 발생했던 모든 전염병 사태에서 얻은 교훈이다. 2014년 라이베리아에서 살던 토머스 던컨은 집 주인의 딸이 에볼라 의심 증세를 호소하자 즉시 구급차를 불렀지만, 이미 넘쳐나는 환자로 기능이 마비된 의료센터는 응급차를 보내주지 않았다.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던컨은 집주인을 도와 택시로 여성을 병원까지 실어 날랐다. 병원은 병상이 부족하다며 이들을 돌려보냈고, 여성은 결국 귀가한 후 몇 시간 만에 숨졌다. 그리고 던컨은 며칠 후 예정대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가 바로 미국 내에서 발생한 첫 에볼라 환자였다. 서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에볼라가 대륙을 건너 전 세계를 휩쓸 수 있다는 공포의 서막이었다. 애초에 서아프리카의 의료 시스템이 붕괴되지 않았다면, 던컨이 집주인의 딸을 직접 택시로 실어나를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던컨이 미국에 에볼라 바이러스를 전파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쯤 진정될지는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신종 코로나가 끝이 아닐 것이라는 점뿐이다. 14세기 흑사병이 유럽을 휩쓰는 동안에도 아프리카인이나 아시아인들은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세계화 시대에는 전염병으로부터 숨을 곳이 없다. 5~6년 주기로 전염병 확산이 반복되는 대유행병의 시대에 인류는 모두 한배에 탄 공동운명체다. 타인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수준의 경각심이 요구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넓은 지평의 인류애를 필요로 하는 시대. 중국인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고, 지구 반 바퀴 너머 서아프리카 국민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다. 우리는 지금 선을 긋고 따지며 혐오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네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하고, 내가 건강해야 우리 모두가 건강할 수 있다. 우리가 아산이고, 진천이고, 우한이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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