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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의 사이시옷] ‘프로 라이프’와 ‘프로 건’의 끔찍한 합체

칼럼

by 정소군 2022. 6. 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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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유밸디의 롭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오열하는 아이와 아버지. / AP연합뉴스

 

미국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가장 첨예한 이슈는 여전히 임신중단과 총기규제다. 아직도 1960년대에 갇혀 있는 듯한 그 시대적 후진성도 놀랍지만, 임신중단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곧 총기규제에도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엔 놀라움을 넘어 막막함마저 느끼게 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 보자면, 그 두 극단적 입장은 가장 먼 대척점에 놓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배우 우피 골드버그는 어린이 19명과 교사 2명의 목숨을 앗아간 텍사스 초등학교 총기난사 사건 후 “총기규제 완화법에 서명한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 덕에 총기를 난사하기 아주 쉬워졌다”면서 “애벗 주지사는 총기 사건에도 임신중단 금지법을 적용해보라”고 일갈했다.

지난해 애벗 주지사는 ‘생명은 신성한 것’이라며, 임신중단을 한 여성은 물론 그 조력자까지 모조리 고발하도록 한 법에 서명했다. 이 법의 논리를 똑같이 적용하면 총기난사범은 물론이고, 한번에 무려 30발 이상의 총알이 장전되는 AR-15 18세 청소년의 손에 쥐여준 총기상까지 조력자로 처벌해야 마땅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자궁 밖에서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한 태아에 대해서도 ‘생명의 신성함’을 설파하는 사람들이라면, 자궁 밖의 어린 생명을 지키는 데도 누구보다 앞장서는 것이 당연한 일 아닌가.

 

물론 현실은 정반대다. 수정한 지 6주밖에 되지 않은 배아까지 앞세워 여성의 자기 몸에 대한 선택권을 박탈한 자들은, 대량살상무기를 자유롭게 소지할 권리를 얻기 위해 초등학생들이 교실에서 떼죽음을 당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골드버그는 스스로를 ‘프로 라이프’(pro-life)라 칭하는 이들에게 위선을 집어치우라고 말한 것이다.

 

사안별 입장이 다를지언정 일관된 논리와 상식을 가진 사람과는 적어도 이성적 토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프로 라이프’와 ‘프로 건’(pro-gun)을 동시에 주장하는 모순에도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다. 그리고 참담하게도 그 모순의 정점에 선 것이 바로 헌법의 이름으로 방패가 되어주고 있는 미국 보수 대법관들이다.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기로 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문 초안을 작성한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는 듯 판결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헌법 그 어디에도 임신중단권에 대해 언급된 부분이 없다. 그런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암시적인 조항조차 없다.” 헌법에 임신중단권이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안타깝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틀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1787년 건국의 ‘아버지’ 55명에 의해 만들어진 미 헌법에 임신중단권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 아닌가. 여성들에게 참정권은커녕 교육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던 시절에 만들어진 헌법이니 당연히 여성은 지워져 있을 수밖에. 알리토 대법관은 미국이 극복해 나가야 할 과거의 역사적 한계를, 새로운 역사적 퇴행의 근거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헌법에 명시되지 않았으니 불법이라는 그의 ‘엄격한’ 논리는 총기규제 앞에서 다르게 작용한다. 총기 옹호론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수정헌법 2조는 단 한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하는 시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이는 연방정부가 처음 만들어질 당시 연방군이 주정부를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삽입된, 시대적 소명이 다한 조항이다. 이 조항 어디에도 민병대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이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할 권리는 명시돼 있지 않다. 실제 미 연방대법원은 1876년부터 1939년 사이 수정헌법 2조가 ‘개인’의 총기소유권에 대한 조항이 아니라는 판결을 무려 4번이나 내린 바 있다고 뉴욕대 로스쿨의 마이클 월드먼 브레넌정의센터 소장은 지적한다.

 

한세기 넘게 사문화됐던 수정헌법 2조가 개인의 무제한적 총기소유권에 대한 헌법적 근거로 부활한 것은 2008년 ‘컬럼비아 대 헬러’ 판결부터다. 전미총기협회(NRA)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 논리와 정책을 개발해줄 법학자 및 정치인에게 엄청난 돈을 뿌리며 수십년 동안 공들여온 결과다. 이때 총기 자유에 손을 들어준 대법관 5명은 모두 NRA 영구회원인 혹은 이었던 대통령들에 의해 임명된 자들이었다. 물론 알리토 대법관도 여기에 포함된다.

 

헌법을 빙자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고 총기소유의 신성한 권리를 주장하는 저들의 논리가, 성경이 노예제를 비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이 허락한 노예제”라는 궤변을 펼쳤던 미 남부 농장주들과 다를 바 무엇인가. 올바로 해석되지 않은 역사는 족쇄에 불과하다. 역사의 발전은 더디더라도, 최소한 더 이상의 퇴행은 막아야 한다. 그게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도리이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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