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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세계를 흔든 인물](1) 미 NSA 도청 폭로 스노든

국제뉴스/국제인물

by 정소군 2013. 12. 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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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대테러 명분 전세계 감시… 실명 내부고발 ‘1인 투쟁’


지난 6월, 서른 살 미국 청년은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된 미국의 감시를 뚫고 가까스로 러시아 모스크바 공항 환승구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가 예약한 쿠바행 항공기의 이코노미 17A 좌석은 빈 채로 쿠바에 도착해야 했다. 그가 환승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미국이 그의 여권을 말소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러시아에 머물고 있지만 서방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불청객 신세가 됐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사진)이 미 국가정보국(NSA)의 무차별적인 도·감청 사실을 폭로한 지 6개월이 흘렀다. 스노든이 NSA 폭로를 통해 제기하고자 한 것은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국가의 개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정보수집 관행이었다. 그가 폭로하면서 한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이 기록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은 큰 울림이 있었고, 9·11 테러 이후 거칠 것 없이 폭주하는 국가권력에 제동을 걸 강력한 경고신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따랐다. 하지만 스노든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그의 처지와 마찬가지로 자리잡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NSA의 정보수집은 냉전시대의 종언으로 ‘국가 안보’란 이름 아래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할 수 있는 명분을 잃은 국가들이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이란 미명 아래 다시 과거로 회귀했음을 보여준 증거였다. 그 결과 ‘민주주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미국의 민낯은 물론 미국으로부터 도청을 당한 국가조차도 공범자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국은 NSA에 지속적으로 도청을 당한 ‘핵심감시국’ 중 하나였지만, NSA가 해저통신망을 이용해 중국을 도청할 수 있도록 협조해온 파트너이기도 했다. 키스 알렉산더 NSA 국장은 의회 청문회에서 외교관 출신 의원의 추궁을 받자 “도청 정보를 가장 많이 주문한 이들이 바로 (당신 같은) 외교관”이라고 쏘아붙이면서 “유럽의 도청기록은 우리가 직접 한 것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정보기관이 건네준 것”이라고 털어놨다. 

스노든의 폭로 덕분에 전 세계 시민사회는 물론 NSA 정보수집에 협력해온 구글·페이스북·트위터 같은 미국의 인터넷 기업들조차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NSA 감시체계 개혁을 촉구했다. 유럽연합 에선 테러를 방지하겠다며 최대 2년까지 고객의 통신서비스 이용 내역을 보관토록 한 ‘데이터유지법’이 개인의 사생활을 지나치게 침해한 것이라는 여론이 최근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견고한 공조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정부와 정보기관들은 반격을 시작했다. 스노든 폭로 이후 오바마 행정부는 한때 NSA에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NSA 국장과 사이버사령관의 겸임 폐지 방안을 검토했지만 내부의 반발로 무산됐다. 

NSA에 의해 도청을 당한 당사자인 프랑스와 독일은 오히려 미국에 영국과 같은 수준의 정보공유협약 체결을 요구했다. 겉으로는 미국의 행동을 비판하면서도, 미국과 ‘첩보동맹’을 맺어 NSA가 수집한 정보 일체를 공유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유럽의회는 오는 18일 열리는 회의에서 스노든의 화상 증언을 청취할 예정이나, 일각에서 “스노든의 증언이 미국과의 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고 반발해 일정이 불투명해졌다. 

스노든을 바라보는 미국 시민들의 시선도 호의적이지 않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의 조사 결과, ‘국가 안보를 위해 NSA의 전화 기록 추적을 허용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절반 이상인 56%가 찬성했다. 심지어 ‘테러 방지를 위해선 e메일 같은 개인의 온라인 활동도 감시 대상에 포함해야 하느냐’는 설문에 45%가 찬성했다. 

누구는 스노든을 ‘반역자’라 불렀고, 누구는 그에게 ‘영웅’이란 칭호를 선사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그저 “(개인의 권리가 보호받는 사회에서 살고 싶은) 평범한 미국 시민”이라고 했다. 스노든은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것을 꼭 보여주고 싶다”면서 “(국가) 권력자들로부터 자유를 지키는 데 내 생을 바칠 것”이라고 말했다. 스노든의 폭로를 가장 먼저 보도한 가디언은 “이제까지 공개된 기밀문서는 스노든이 가지고 있는 문건의 1%밖에 되지 않는다”며 “진짜 ‘큰 것’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그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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