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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구제금융 합의… '그렉시트'는 막았다

국제뉴스/유럽과 러시아

by 정소군 2015. 7. 1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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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는 없다.” 그리스와 유로존 채권단이 17시간이 넘는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마침내 3차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그러나 그리스와 채권단의 싸움에서 승자는 없었다. 각자의 국익 앞에 사분오열된 유로존의 모습은 하나가 되고자 했던 유럽연합(EU)의 허상을 드러냈다. 반긴축 여론을 등에 업고 집권한 시리자는 그리스 국민들의 ‘오히(OXI·반대)’ 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도날드 투스크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유로존 정상들이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뤘다”며 “그리스가 추가 개혁안을 이행하는 조건으로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의 구제금융을 지원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치프라스 총리는 3차 구제금융에서 국제통화기금(IMF)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국유자산 민영화 규모를 축소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그리스는 500억유로(약 62조8000억원) 이상의 국유 자산을 팔아 부채를 상환하라는 독일의 요구에 대해 “이는 그리스 정부를 모욕하려는 의도”라며 “170억유로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마지막까지 저항했지만,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협상안은 그리스와 유로존 회원국들의 각국 의회를 최종 통과해야 한다.

 

그리스는 3차 구제금융 지원으로 IMF와 유럽중앙은행(ECB)의 부채를 상환해 디폴트에서 벗어나고, 조만간 은행 영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대가로 혹독한 긴축이 기다리고 있는 데다 3차 구제금융의 시한이 다가오면 또다시 이러한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시적인 봉합책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더 가혹한 긴축안’ 받아든 그리스… 이제부터 ‘회생’ 시험대


반년 넘게 끌어온 싸움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앞세운 유로 채권국들은 지난 1월 반긴축을 내건 그리스 좌파연합정당 시리자 정권이 출범한 후부터 파상공세를 펼쳐왔다. 그리고 결국 메르켈은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거의 모든 긴축 조건을 수용하면서 사실상 ‘백기투항’했다.

 

그러나 13일 협상을 타결시킨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메르켈은 지쳐 보였고, 얼굴에서는 아무런 표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리스 사태 앞에서 유로존 회원국들은 각자 국익에 따라 분열했고, 유럽통합의 꿈은 큰 상처를 입었다. 한 기자가 회견장에서 “이번 타결안이 1919년 베르사이유 조약보다 더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질문하자, 메르켈은 “나는 그런 식의 역사적 비교에 동참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베르사이유 조약은 1차 세계대전 후 전승국들이 독일에게 거대한 배상책임을 요구했던 조약이다.

 

개혁법안 의회 통과·긴축 반발 여론 등 ‘과제’ 산적


그러나 이번 타결안은 채권단이 그리스 국민투표 이전에 요구했던 긴축안보다 훨씬 가혹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스는 연금 삭감, 시장규제 완화, 공공기업 민영화, 대량해고 등 노동시장 개혁 조치 등을 이행해야 한다. 또 저소득층에게 역진적인 부가가치세를 인상해야 한다.



특히 그리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3차 구제금융 참여 배제와 국유재산 민영화 펀드 규모 축소라도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했다. 그리스는 모든 채무국에게 일괄적으로 가혹한 긴축 규정을 적용하는 IMF가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 주도의 3차 구제금융 집행부에서 제외되길 원했지만, 독일은 IMF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꺾지 않았다.

 

또 독일은 그리스의 국유재산을 민영화하는 방식 등으로 500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만들어 절반은 은행자본 확충에 쓰고 나머지는 부채 상환 등을 위해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스는 “170억유로 이상은 불가능하다”고 항변했지만 묵살됐다. 이에 따라 그리스는 앞으로 공기업이나 섬 등 국유재산 상당 부분을 내다팔아야 한다. 다만 채권국들은 ‘명목적 헤어컷’(원금 탕감)은 불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의 부채 경감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7·8월 각종 부채상환일… 지원 늦어질 땐 위기 계속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전문가들은 그렉시트 위기를 모면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향후 협상과정이 순탄하게 전개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일단 그리스는 채권국의 요구에 따라 오는 15일까지 의회에서 연금·과제 개혁 법안 등을 통과시켜야 한다. 이후 독일·핀란드 등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의 의회에서 3차 구제금융 협상안이 통과되면, ESM은 구체적인 구제금융 지원 절차를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에 35억유로의 채권만기일이 돌아오는 등 7∼8월에 각종 부채 상환일이 몰려 있어 구제금융 지원이 늦어질 경우 위기상황이 계속될 수 있다.

 

또 긴축에 대한 반발로 그리스 집권당 내부나 현 정부가 정치적으로 불안정해질 수 있는 것도 불안 요소다. 만약 이번 타협안에 반발해 시리자 내 강경파들이 탈당할 경우 연립정부 붕괴가 예상돼 조기총선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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