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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프라스, 대국민 설득 등 고난 연속… 시리자 강경파 반발, 연정 위기

국제뉴스/유럽과 러시아

by 정소군 2015. 7. 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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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는 유로존 채권국과의 협상보다 더욱 어려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 지난 5일 국민투표에서 ‘오히(OXI·반대)’를 선언했던 그리스 국민들에게 혹독한 긴축안을 설득하는 일이다.

 

13일 밤샘 협상을 마치고 아테네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분노한 시위대였다. 이날 의회 앞에서는 소규모 좌파 정당인 안타르시아 주도로 합의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시리자의 깃발을 불태우며 시리자가 긴축을 끝내겠다는 총선 공약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돌아온 총리, 돌아선 지지자, 돌고 도는 시련

 

국민투표 직후 전격 사임한 야니스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도 호주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3차 구제금융 협상안을 ‘신 베르사유 조약’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그는 이번 합의안을 1967년 그리스 군부 쿠데타와 비교하면서 “당시에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무기가 ‘탱크’였다면, 지금은 ‘뱅크’(은행)”라고 꼬집었다. 이어 “치프라스 총리가 계속 총리직을 지키고 싶어한다면 개인적으로 놀라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치프라스 총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15일은 유로 채권단이 3차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한 첫번째 시한이다. 이날까지 그리스 의회에서 연금 삭감과 부가가치세 인상, 노동시장 개혁, 민영화 등 4개 부문에서 합의된 개혁 법안이 통과돼야 한다. 법안 통과가 늦어지면 오는 20일 유럽중앙은행(ECB) 부채상환을 하지 못해 긴급유동성지원 자금이 완전히 끊겨버릴 위기에 놓이게 된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13일 유로 채권국과의 밤샘 협상을 마친 후 아테네로 돌아와 총리관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번 합의로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는 막았지만, 채권단의 혹독한 긴축요구를 거의 모두 수용해 거센 국내 반발에 직면해 있다. 아테네 | AP연합뉴스

 

시리자 내 강경파 모임인 ‘좌파연대’ 소속 의원들은 기권을 하거나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이 중 한 명인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의원은 “이번 타협안은 조건 없이 항복한 것”이라며 “그리스는 신식민주의적 노예 상태에 놓였다”고 비난했다. 연립정부 파트너인 우파 독립그리스인당(독립당)도 이번 합의를 ‘독일의 쿠데타’라 칭하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제1야당인 신민주당과 사회당 등 다른 중도·보수 정당들이 모두 협상안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통과에는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관심의 초점은 치프라스가 계속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을 지에 모아진다. 현재 집권 연정인 시리자와 독립당은 과반에서 불과 11석 많다. 시리자 내 강경파와 독립당이 탈퇴할 경우 연정 붕괴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은 조기 총선 보다는 치프라스가 긴축안을 지지하는 신민주당과 사회당 등 다른 모든 당과 초당적인 범연합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예상했다. 당파 싸움이 심한 그리스에서 초당적 정부가 구성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조기총선이 실시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조기총선이 실시될 경우, 시점은 3차 구제금융 협상이 마무리된 후인 오는 9월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파이낸셜타임스와 가디언 등은 국내 반발 때문에 치프라스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리스 양대 노총인 공공노조연맹(ADEDY)은 의회가 개혁안을 처리할 15일 합의안에 반대하는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연맹은 조합원인 공무원들에게 파업에 동참하고 의회 앞에서 열릴 시위에 합류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치프라스 총리 취임 이후 첫 파업이다.   


긴축 피로 누적… 그리스 '추가 긴축' 견뎌낼까


유로존 채권단이 그리스에 요구한 개혁안들이 이미 ‘그로기 상태’에 놓인 그리스 경제를 더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높다. 게다가 채권단이 제시한 국유자산 민영화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리스는 남유럽 재정위기 후 강도 높은 구조개혁을 통해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마이너스 10.2%였던 재정적자 비율을 지난해 마이너스 3.5%까지 줄였다. 한국은행은 “이를 위해 장기간의 긴축재정과 임금삭감 등을 감내해 온 대가로 그리스에는 피로와 반발이 축적돼 있는 상태”라고 분석했다. CNN은 “최근 석달 새 그리스의 노숙자가 40% 가까이 늘어났다”면서 “그리스의 취약계층이 긴축 정책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전했다.



그리스의 부채상환 능력도 낙관할 수 없다. 유로 채권단은 3차 구제금융 협상에서 그리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국유자산을 매각해 500억유로 규모의 펀드를 조성, 부채를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난 6년간의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그리스에는 더이상 쓸만한 유동자산이 남아 있지 않다. 결국 그리스가 팔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섬이나 공기업, 국가 유적 같은 고정자산이다.

 

문제는 섬을 팔 경우 섬을 기반으로 소규모 관광업을 하고 있는 서민들의 생계수단이 사라지게 된다. 그리스 정부는 과거에도 해안가의 땅을 팔려고 시도했다가 주민들의 반발로 포기한 바 있다. 게다가 외국인투자가들이 현재 분위기에선 제 값을 치르려 하지 않아 국부가 헐값에 매각될 우려가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실을 감안할 때 실제로 그리스 국유자산 매각은 매년 5억유로 정도만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이런 속도라면 500억유로라는 목표를 달성하는데 100년이 걸린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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