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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 피 빨아먹는 멕시코 밀입국 카르텔 (2021.5.18)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22. 5. 4.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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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와 국경을 맞댄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철사 사다리를 매단 남색 승용차 1대가 장벽을 따라 달리고 있다. 인적이 드문 곳에 멈춰선 자동차 안에서 3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 주위를 살피며 내렸다. 사다리를 들고 있는 남성 2명이 앞장서서 장벽 쪽으로 뛰기 시작하자 나머지 2명도 서둘러 포복 자세로 그 뒤를 따랐다. 조악하게 만든 철사 사다리가 하늘 높이 던져져 장벽 위에 걸렸다. 여성과 남성이 순식간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장벽 너머로 뛰어내렸다. 순찰대에 걸리지 않고 미국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들은 정말 운이 좋았다.

 

멕시코 치와와주 시우다드후아레스에서 일명 ‘코요테’라 불리는 밀입국 브로커들이 밀입국자들과 함께 철사 사다리를 들고 미국 국경 장벽을 향해 뛰어가고 있다. / CNN 캡처


2명의 ‘고객’을 미국으로 보내는 데 성공한 남성들은 일명 ‘코요테’(coyote) 혹은 ‘포예로’(pollero)라 불리는 중미의 밀입국 브로커들이다. 형제지간인 이들에게 이 일은 일종의 ‘가족 사업’이다. “요새는 매주 10~35명 정도를 밀입국시키는 것 같아요. 최근 들어 더 많이 늘었어요. 뒷마당 담장 위에 올라가면 항상 누군가가 달리고 있거나, 장벽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빠와 삼촌의 밀입국 사업을 돕고 있는 14세 소년은 지난 4월 말 CNN에 이렇게 말했다.

500대 기업 부럽지 않은 밀입국 카르텔


2018년 유엔 마약범죄사무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전 세계 각지에서 멕시코로 몰려드는 사람들은 한해 8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국경수비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브로커를 고용한다. 고국의 출발지에서 미국 국경까지 전체 루트를 책임져주는 브로커를 고용하는 사람도 있고, 멕시코에 도착한 후 가장 어려운 관문인 미국 국경을 넘기 위해 현지에서 부분적으로 브로커를 고용하는 사람도 있다. 브로커에게 건네는 금액은 거리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 돼버린 밀입국 브로커 사업의 규모는 매우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연간 40억달러(약 4조482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브로커에게 얼마를 건넸든지 간에 이들 중 국경을 넘는 데 성공하는 이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밀입국자들이 브로커에게 건넨 돈 대부분은 멕시코의 마약·인신매매 카르텔 손에 흘러들어간다. 미국 국경으로 연결된 여러 루트는 멕시코의 범죄 카르텔들이 ‘플라자’라 부르는 구역별로 나눠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구역 카르텔의 허락 없이는 사람이든 마약이든 그 지역을 통과할 수 없다. 밀입국 브로커들은 대부분 카르텔 조직의 일원이거나, 아니면 카르텔에 일종의 통행세를 갖다 바쳐야 한다.

철사 사다리로 2명을 밀입국시킨 시우다드후아레스의 형제 브로커 역시 멕시코에서 가장 오래된 범죄조직 중 하나인 ‘후아레스 카르텔’의 조직원이다. 그들은 국경을 넘을 수 있도록 돕는 대가로 2000달러를 받는다고 CNN에 말했다. 물론 밀입국자들이 고국에서 출발해 국경 근처까지 오는 데 든 브로커 비용은 별도이다. 브로커들은 밀입국자들로부터 받아 챙긴 돈을 카르텔에 바치고, 대신 카르텔로부터 월급이나 커미션을 받는다.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의 국경순찰대장인 빅토르 만하레즈는 “카르텔들은 포춘 500 기업 못지않은 조직망을 갖고 있다”면서 “이 무자비한 조직은 이민자를 사람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한다”고 CNN에 말했다.

카르텔과 한 팀 이룬 멕시코 경찰

그러다 보니 브로커에게 돈을 내고도 미국 국경을 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거나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피해자도 수두룩하다. 갓난아기를 안고 밀입국 여정에 오른 한 과테말라 여성은 3주 동안 여러 브로커 남성들에게 복잡한 길을 안내받으며 멕시코까지 오는 데 성공했지만,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약속했던 미국 국경이 아닌 시우다드후아레스에 있는 정체 모를 집이었다. 창문은 모두 검은 천으로 가려져 있었고, 8일 동안 아무도 먹을 것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는 그곳에서 수십명의 다른 밀입국자들과 함께 갇혀 있다가 겨우 구출돼 멕시코 비영리 기관이 운영하는 보호소에 머무르고 있다.


그렇다면 범죄 카르텔이 밀입국자의 피를 빨아먹으며 ‘사업’을 번창시키는 동안 멕시코 경찰들은 무얼 했던 것일까. 그들이 손 놓고 있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카르텔과 손을 잡고 이중의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

지난 1월 멕시코 북부 국경인 타마울리파스주 카마르고의 버려진 차 안에서 불에 탄 시신 19구가 발견됐다. 이들은 과테말라 등에서 출발해 미국으로 향하던 이민자들이었다. 타마울리파스주는 마약 밀매와 이민자 밀입국 알선 등을 놓고 범죄 카르텔 간 영역 다툼이 치열한 곳이다. 지난 2010년에도 미국으로 가려던 중미의 이민자 72명이 한꺼번에 살해된 채 발견된 ‘타마울리파스 대학살’이 벌어진 적 있다. ‘로스세타스’ 카르텔 조직원들이 트레일러를 타고 가던 이민자들을 끌고간 후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했고, 여기에 응하지 않자 사살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체포된 사람들은 카르텔 조직원들이 아니었다. 12명의 경찰 특수작전부대 대원이었다. 안보 전문가인 릴리안 카파 콜로폰은 “특수작전부대는 주정부가 카르텔과 싸우기 위해 창설한 엘리트 경찰조직이지만, 이들은 오히려 카르텔과 결탁해 밀입국자들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이 같은 수탈이 이민자들의 여정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쿠리에 저널에 지적했다. 미국 이민연구센터의 토드 벤스만 수석연구원도 “경찰들이 (통행세 납부를 거부한) 이민자들을 카르텔의 지시에 따라 살해했거나, 아니면 자신들이 직접 통행세를 받아내려 했는데 이민자들이 거부해 살해했거나 둘 중 하나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같은 카르텔과 경찰의 유착관계는 카르텔이 마음 놓고 암약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2010년 모두를 경악하게 한 대학살 사건 당시 처벌받은 카르텔 조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중남미 이민자들 목숨 건 여정

이 같은 위험을 알면서도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등 중미의 이민자들은 범죄조직의 폭력, 코로나19와 허리케인이 빚어낸 극도의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목숨 건 여정을 택할 수밖에 없다. 카르마고에서 사망한 19명 중 1명인 마빈 알베르토 토머스(22)는 브로커에게 건넬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 안 되는 가산까지 팔아야 했다. 그의 여동생은 “오빠는 그저 어머니와 4명의 여동생을 먹여살려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라고 흐느꼈다.

정유진 국제부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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