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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가난한 자에게 더 가혹한 ‘에볼라’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4. 8. 1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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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전 세계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퍼져나가는 스릴러 SF영화 ‘아웃브레이크’(1995년작)가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 기니·시에라리온·라이베리아 등 서아프리카 3개국에서 시작된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아프리카 최대 인구대국 나이지리아(인구 1억7000만명)에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자 2명이 사망하고, 아프리카가 아닌 중동지역에서도 에볼라 의심증세를 보이던 남성 1명이 사망했다. 2명의 미국인과 1명의 스페인인도 에볼라에 감염돼 본국으로 송환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월 이후 현재까지 에볼라 감염자가 1700명을 넘어섰고 이 중 900여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못 사는 나라의 열악한 대응 시스템

에볼라 바이러스는 괴질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1967년 독일의 미생물학자 마르부르크 박사가 콩고민주공화국 에볼라강 근처의 한 마을에서 처음 발견한 것이다. 한 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20~90%에 달하는 데다 아직까지 예방 백신은커녕 치료법도 없어 ‘죽음의 바이러스’로 통한다. 잠복기(2~21일) 후에 갑자기 발병하며 고열, 오한, 두통 등 초반에는 감기와 비슷한 증세를 보인다. 하지만 더 진행되면 눈·코·입 등 온몸 및 내장에 출혈이 일어나며, 다발성 장기부전이 오면 심장 기능이 떨어지고 의식장애, 호흡곤란 등으로 인해 쇼크로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염은 감염된 사람의 체액, 분비물, 혈액 등에 직접 접촉하거나 감염된 침팬지, 고릴라, 과일박쥐 등 중간숙주 동물과 접촉했을 때 이뤄진다. 바이러스 감염자와 단순히 접촉하거나 감염자가 만진 공공용품을 만지는 것만으로는 감염되지 않으며, 공기 중으로도 전파되지 않는다.

지난7월 26일, 한 나이지리아 시민이 에볼라 바이러스 소식이 담긴 신문을 읽고 있다. | AP연합뉴스

에볼라 바이러스는 처음 발견된 장소에 따라 이름이 붙여진 자이르, 수단, 코트디부아르, 레스턴, 분디분교 등 5개의 아종이 있다. 이 중 필리핀에서 기원한 레스턴 아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프리카 기원의 바이러스로, 이제까지 대다수의 사망자가 아프리카 지역에서 발생했다.

신종 전염병 이해 못 하는 주민들, '의료진 공포증'

역사상 최악의 사태로 번진 에볼라 바이러스는 왜 지금, 서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이렇게 확산하고 있는 것일까. 기니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은 그동안 한 번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출현한 적이 없는 곳이다. 기니에서 발견된 것은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알려진 자이르 아종 바이러스로, 이전에는 중앙아프리카에서만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서아프리카의 극심한 가난과 열악한 의료시스템에서 찾는다.

미 툴레인대학의 바이러스 전문가인 대니얼 바우슈 교수는 “병원균을 옮기는 박쥐 등은 보통 사람들과 접촉할 가능성이 적은 깊은 숲속에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먹을 것과 자원을 구하러 숲 깊이 들어가는 바람에 이것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확산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미국의 소리’에서 말했다.

기니는 유엔개발계획(UNDP)이 ‘삶의 질’을 평가한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전 세계 187개 국가 중 178위를 기록하고 있다.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도 174위, 177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열악한 경제상황에서 에볼라 출현에 대응할 건강관리 시스템은 취약할 수밖에 없다. 

바우슈는 “시에라리온이나 라이베리아의 병원에 가보면 의료진들이 장갑조차 끼지 못한 채 소독되지 않은 주사바늘을 들고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한 후 환자를 치료하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가장 먼저 2차 감염의 피해자가 됐다. 특히 이 세 나라의 문맹률은 무려 60~80%에 달한다. 10명 중 8명이 글을 못읽을 정도로 교육을 못 받은 상황이다 보니 주민들은 에볼라 같은 신종 전염병이 무엇인지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전염병학자인 미셸 반 헤르프는 “이곳 사람들은 의사들이 질병을 불러온다고 여기면서 의료진을 내쫓고 치료를 피한다”고 말했다. 낯선 의료진이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사람들이 계속 죽어나가는 모습을 본 주민들이 선후 관계를 오히려 거꾸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7월 27일 시에라리온 남동부 도시 케나마에서 의료진이 에볼라 바이러스 환자들의 상태를 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현지의 장례식 문화도 바이러스가 급속히 확산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에볼라 출혈열로 피범벅이 된 시신을 씻기기 위해 여러 사람들이 달려들어 시신을 만지는 바람에 체액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신약, 아프리카 투여 공평성 논란

아무런 약도, 백신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사람들이 죽어가자, 제약회사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에볼라가 발견된 지 45년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제가 나오지 않은 것은 제약회사들이 약을 팔아 얻을 기대수익이 적어 소극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에볼라가 주로 발병한 곳은 가난한 서아프리카였고, 감염자 대부분은 치료제를 구입할 만할 경제적 여력이 없었다. AP통신은 “치료제에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제약회사들은 에볼라 치료제에 대한 본격적인 인체 임상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애슈턴은 이와 관련해 에이즈가 1980년대 미국·유럽까지 전염된 뒤에야 치료제 개발이 본격 시작된 점을 들었다. 그러면서 “힘 없는 소수집단과 관련된 질병에는 대처가 늦어진다”고 지적했다. 저개발국에서 주로 발병하는 말라리아 백신은 최근에야 상용화에 첫걸음을 뗐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실험단계 치료제인 ‘지맵’을 둘러싼 의약윤리에 대한 논란마저 증폭되고 있다. 미국으로 송환된 미국인 에볼라 감염자 2명에게 투여한 지맵이 효과를 나타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절대다수의 감염자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인에게만 신약이 투여된 것은 불공평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지리아 보건당국 등이 미국에 지맵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미 보건당국은 “물량이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를 공동 발견한 영국의 피터 피옷 박사 등은 “서방국가에서 에볼라가 퍼졌다면 보건당국은 당연히 실험약을 사용토록 했을 것”이라며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실험약 투여 여부에 대한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마이클 오스터홈 미네소타대 박사 등은 “개발 중인 실험약의 대량사용이 어려운 상황에서 ‘마법 치료제’로 관심이 쏠리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반박했다. 실험단계의 에볼라 치료제 투입을 확대할지는 조만간 열리는 세계보건기구(WHO) 윤리위원회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14.08.19ㅣ주간경향 10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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