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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해피’하게 살 권리를 허하라- 이란 젊은이들의 반란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4. 6. 3.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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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따라 말춤을 추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 풍기문란죄로 구속되는 나라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실제 이와 비슷한 일이 이란에서 벌어졌다. 요즘 전 세계적으로 패러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패럴 윌리엄스의 ‘해피’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올린 이란의 젊은 청년들이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우리는 테헤란에서 행복합니다’

국내에도 개봉된 애니메이션 영화 ‘슈퍼배드2’의 삽입곡인 ‘해피’는 중독적인 멜로디와 긍정적인 메시지를 담은 곡으로 빌보드 핫 100 차트 1위에도 등극했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는 남녀노소가 상점·거리·버스 등에서 행복을 표현하며 코믹한 춤을 추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 전 세계에서는 이를 따라하는 패러디 동영상이 쏟아지고 있다.

이란 청년들이 제작한 ‘해피’ 패러디 동영상. | AP연합뉴스

이 노래의 팬인 이란 젊은이들 역시 ‘우리는 테헤란에서 행복합니다’라는 패러디 동영상을 만들었다. 동영상은 ‘네가 천장 없는 방에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와 함께 박수를 쳐줘. 난 행복하니까’라는 노래 가사처럼 옥상에 올라가 남녀가 함께 햇살 아래 춤을 추는 장면 등이 나온다. 이들이 유튜브에 올린 이 동영상은 16만건 이상의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 동영상이 예상 외의 인기를 끌자 이란 ‘도덕 경찰’이 문제를 삼기 시작했다. 이란에서는 도덕 경찰이 이슬람 법에 따라 여성의 옷차림 등을 단속한다. 이슬람 율법은 남녀가 같이 춤추는 것과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은 채 외출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여성 출연자 3명은 동영상 속에서 모두 히잡을 쓰지 않았다.

경찰은 5월 20일 동영상과 관련된 13명을 체포했다. 이 중 동영상에 출연한 6명은 공중파 TV 카메라 앞에서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공개 사죄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호세인 사제디니아 테헤란 경찰청장도 TV에 나와 “누구든 다시는 이런 비디오를 제작해서는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다. 뉴욕타임스는 풀려난 청년들의 가족에게 최소 1만 달러(약 110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됐으며, 이들은 이후에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보도했다. 영상 연출자 등은 여전히 구금상태라고 이란 국영TV IRIB2가 전했다.

패러디 동영상 만든 청년들 체포에 논란

청년들의 체포 소식이 전해지자 국제 인권단체들은 크게 반발했다. 가수인 패럴 윌리엄스는 자신의 트위터에 “행복을 전파하려는 젊은이들을 잡아 가두다니 너무나 슬픈 일”이라고 올렸다.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행복은 우리 국민의 권리다. 우리는 기뻐서 한 행동에 대해 지나친 대응을 해선 안 된다”는 자신의 예전 트위터 글을 리트윗하며 체포에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이란의 이슬람 강경 보수주의자들과 변화를 꾀하려는 온건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극심한 갈등을 고스란히 보여준 사례다. 온건파를 대표하는 로하니가 약 1년 전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이란은 “더 이상 세계로부터 고립되어선 안 된다”면서 조금씩 문호를 열며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정치적으로는 미국과 핵협상을 진행 중이고, 사회적으로는 인터넷 검열을 비롯한 각종 제약들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로하니 대통령은 이번 ‘해피’ 동영상 파문이 일기 직전에도 “인터넷은 위협이 아니라 기회”라며 통제 완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강력한 통제를 주장하는 강경파들과 번번이 마찰을 빚어 왔다. 이란의 군조직과 사법당국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 강경파들은 인터넷, 영화 등을 통해 침투하는 서구 문물이 이슬람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한 이란 여성이 페이스북에 히잡을 벗고 바람을 만끽하는 사진을 올렸다. | 페이스북 ‘나의 은밀한 자유’ 페이지


최근 이란의 한 여배우가 칸 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입맞춤 인사를 한 것을 가지고 이란에서 큰 논란이 야기된 것도 이 같은 갈등의 연장선이다. 이란 여배우 라일라 하타미는 5월 18일 칸 영화제에서 질 자콥 집행위원장과 서양식 입맞춤 인사를 했다. 양볼을 차례로 비비며 ‘쪽’ 소리만 내는 인사로 진짜 입맞춤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 장면이 이란의 한 언론매체를 통해 이란 국내에 공개되면서 하타미가 이란 여성의 순결에 모욕을 줬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란의 율법 해석에 따르면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여성은 가족 이외의 다른 남성과 신체적 접촉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페이스북에서 퍼지는 히잡 불복종 운동

호세인 노샤바디 이란 문화차관은 국영방송 IRIB 웹사이트에 “국제행사에 참석한 사람은 이란 국민의 명성과 순결을 지키기 위해 항상 주의해야 하며, 이란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란 여성은 순결과 순수의 상징이며, 하타미의 부적절한 행위는 우리의 종교적 믿음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화적 자유를 요구하는 이란 청년과 여성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변화의 물꼬는 이미 시작됐다. 현재 페이스북에서는 히잡을 강요하는 이슬람 율법에 대한 ‘불복종’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란 언론인 마시흐 알리네자드가 ‘나의 은밀한 자유’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자마자 일주일 만에 회원수가 10만명을 넘어서는 등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이란 여성들은 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히잡을 벗어던진 자신의 사진들을 올리고 있다. 한 사진에는 젊은 여성이 긴 갈색머리를 하나로 묶고 도로 가장자리에 서서 두 팔을 벌린 채 “1초뿐일지라도 자유는 달콤하다”고 말한다. 또 다른 여성은 꽃이 가득 핀 들판에 선 채 “바람이 내 머리카락 사이를 통과하는 신비로운 느낌을 항상 경험하길 원한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진이 이란 전역에서 쏟아져들어오고 있으며, 특히 여성들은 고속도로와 해변, 주요 관광 명소 등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이 히잡을 내린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속의 한 할머니는 “부디 다음 세대는 머리가 백발이 되기 전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맛볼 수 있길 바란다. 이게 지나친 요구인가?”라고 외친다.

‘나의 은밀한 자유’가 인기를 끌자 이란의 보수 강경파는 알리네자드가 이란의 적들과 내통해 난잡한 행동을 부추긴다고 몰아붙였다. 보수적인 한 시아파 이슬람 학교는 테헤란 시내에서 히잡을 거부하는 여성들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여한 수백명의 남녀는 보란 듯이 검은 차도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쌌다. 알리네자드는 “난 히잡을 무조건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히잡을 쓸지 말지를 결정할 자유는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이슬람 보수 강경파는 언제까지 이란 청년들에게 팝송을 금지하고 여성들의 머리에 히잡을 강요할 수 있을까. 이미 시작된 변화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2014.06.03ㅣ주간경향 10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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