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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스리랑카, 종료된 내전 그러나 ‘끝나지 않는 보복’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4. 4. 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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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정부 군인들에게 처음 성폭행을 당한 날, 타밀 반군(LTTE·Liberation Tigers of Tamil Eelam) 출신인 스리랑카 여성 바산타가 한 일은 화장실에 가서 피를 씻고 조용히 난민 캠프 천막으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자기 자리에 누운 것이었다. 옆에 누운 다른 여성들이 자신이 당한 일을 알아챌까봐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스리랑카 문화의 특성상 성폭행을 당한 사실은 누구에게도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후에도 군인들은 조사를 해야 한다며 수시로 그녀를 불러내 성폭행을 했다.


난민캠프서 성적학대·폭행 비일비재

바산타가 머물고 있는 난민 캠프는 타밀 반군 출신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스리랑카 정부가 세운 곳이다. 2009년 스리랑카는 26년 동안 이어져온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종식했다. 스리랑카 인구의 74%를 차지하는 불교계 싱할라족과 18%를 차지하는 소수 힌두교계 타밀족 사이의 싸움이었다. 승리를 거둔 스리랑카 정부는 타밀 반군으로 활동했던 사람들을 조건없이 포용하겠다고 밝혔다. 난민 캠프는 그들의 재활과 직업교육을 돕는다는 명목 하에 세워졌다.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오른쪽)이 2월 4일 육군 사령관으로부터 무언가를 보고받고 있다. 콜롬보|AP연합뉴스

하지만 영국의 인권단체인 ‘바 휴먼라이츠 커미티’가 최근 발표한 타밀족 인권유린 실태조사 보고서 <끝나지 않은 전쟁>에 따르면, 난민 캠프는 본래 목적과 달리 타밀 반군 출신들을 폭행하고 가둬두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다. 여성은 물론 남성에 대한 성적 학대 역시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지만, 바산타가 수용된 난민 캠프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서로 차마 말을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타밀 반군의 주요 활동지였던 스리랑카 북부는 전쟁이 끝났음에도 상시적인 계엄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현재 스리랑카군 전체 규모의 약 4분의 3이 북부에 밀집돼 있다.

‘흰색 밴’(white vans)은 납치의 대명사로 악명이 높다. 타밀 반군 인사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납치할 때마다 흰색 밴 차량이 어김없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차량은 스리랑카 국방부 직속기관인 스페셜 태스크 포스(STF)의 지시를 받아 움직인다. 보고서는 흰색 밴에 납치된 사람들은 두 눈이 가려진 채 어딘지 알 수 없는 독방으로 끌려간다고 밝혔다. 독방에서 겨우 살아나온 사람들은 모래를 가득 채운 플라스틱 파이프, 전깃줄, 로프 등으로 각종 고문을 받았으며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매질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타밀 반군 출신이라고 해도 이들 중 상당수는 바산타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에 휘말린 사람들이다. 바산타가 타밀 반군으로 활동한 것은 내전이 종식되기 직전 불과 4개월뿐이었다. 평범한 타밀족 민간 여성에 불과했던 그녀는 전쟁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점점 치열해지자 강제 징집돼 어쩔 수 없이 반군으로 활동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밀 반군’이란 낙인이 찍혀 지금까지도 갖은 학대와 폭행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타밀족을 돕는 인권 활동가나 언론인에 대한 불법구금 및 테러도 횡행하고 있다. 지난 3월 16일에는 타밀 반군의 수도였던 킬리노치 지역에서 타밀족의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던 프라빈 마헤산 신부와 룩산 페르난도가 테러방지법 위반 혐의로 체포구금됐다가 국제사회의 석방 요구로 19일 겨우 풀려나기도 했다.

스리랑카의 타밀족과 싱할리족 간의 뿌리깊은 반목은 민족 갈등을 겪고 있는 대부분의 다른 동남아 국가의 경우처럼 영국 식민지 시절에서부터 비롯됐다. 한때 두 민족은 영국의 식민정책에 맞서 공동으로 싸울 만큼 사이가 좋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영국이 두 민족을 이간질하는 정책을 쓰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다수인 싱할리족의 우월감과 소수 타밀족의 열세로 갈등은 깊어지게 됐다.

스리랑카 타밀족 여성이 2013년 11월 내전 중 실종된 15살 아들이 찍힌 사진을 들어 보이며 아들을 찾아달라고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그녀의 아들은 타밀반군으로 강제징집돼 전쟁에 참여했지만, 이후 현재까지 소식이 알려지지 않았다. 자피나|AP연합뉴스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비극은 다시 되풀이된다. 이것이 내전 종식 5년째에 접어든 스리랑카의 현주소다. 전쟁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타밀족에 대한 탄압이 공공연하게 자행될 수 있는 것은 내전 당시 타밀족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고문한 전쟁범죄자들 중 처벌을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오랜 내전 기간 중 10만여명이 죽고 수만명이 실종됐다. 특히 내전 막바지에 스리랑카 정부군은 북부지역 사람들을 한 곳에 몰아넣고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이때 희생된 사람들만 4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민간인이었다.

유엔서 독자적으로 실태조사 나서

하지만 스리랑카 정부의 공식 입장은 “민간인 희생자는 없다”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5년이 흘렀지만, 이제까지 정부 차원의 전쟁범죄 조사위원회는 단 한 번도 꾸려지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마힌다 라자팍세 스리랑카 대통령은 “군사법원에서 전쟁범죄자들을 조사했지만, 아무런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현재 스리랑카는 라자팍세 대통령이 10년 가까이 장기집권하고 있으며, 그의 일가친척과 측근들이 경찰부터 군조직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심 국가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전쟁범죄 규명은 라자팍세 대통령에게도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며 “특히 국방장관인 그의 친형은 내전 당시 군사작전을 직접 이끈 사람”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스리랑카 곳곳에서는 신원을 알 수 없는 수많은 해골들이 무더기로 발굴되고 있다. 2013년 12월에도 52명을 집단 매장한 무덤이 발굴됐는데, 그 중에는 어린이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죽어서도 가족의 품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스리랑카 정부가 계속 전쟁범죄를 은폐하려 하자 독자적으로 실태조사에 나설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인권이사회의 47개 회원국은 스리랑카 정부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27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회의에서 스리랑카 전쟁범죄 조사안을 안건에 부쳐 23대 12로 통과시켰다. 휴먼라이츠워치의 미낙쉬 간굴리 남아시아 국장은 “스리랑카 정부는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아무런 의지가 없다”면서 “그것이 이번 투표 결과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자팍세 대통령은 “선입견과 편견에 의한 조사가 진행될 것이 뻔하다”면서 “이는 겨우 내전이 종식된 스리랑카에 오히려 갈등과 반목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사무총장 직속 스리랑카 전문가 패널 위원으로 활동한 마르주키 다루스만 전 인도네시아 검찰총장은 “유엔은 편견 없이 이번 사건을 조사할 것”이라면서 “유엔이 정한 국제 인권기준을 준수하겠다고 동의한 스리랑카는 유엔의 조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글로벌메일에 말했다.


2014.04.08ㅣ주간경향 10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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