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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위기로 번지는 ‘이라크 삼국지’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4. 7. 1.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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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가 또다시 전쟁의 위기에 내몰렸다.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가 무서운 기세로 이라크 북부 도시들을 차례로 점령한 데 이어 수도 바그다드의 턱밑까지 진격한 것이다. 오랫동안 독립을 꿈꿔왔던 쿠르드족이 이런 황금기회를 놓칠 리 없다. 쿠르드족은 이라크 치안군이 ISIL의 공격을 피해 도망간 틈을 타 유전지대인 키르쿠크 장악에 나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라크가 ‘수니파-시아파-쿠르드족’ 지역으로 세 동강이 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1년 “이라크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다”고 선언하며 이라크에서 완전히 발을 뺀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사관 경비인력 270명에 이어 특수부대(Green Beret) 300명을 파견했지만 여전히 공습을 망설이고 있다. 이라크와 국경을 마주한 시아파 맹주인 이란과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연일 대립의 각을 세우고 있다. 이라크와 중동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6월 16일 이라크의 2번째 도시 모술에서 ISIL의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고 있다. _ AP연합뉴스


이라크 사태의 본질은 권력갈등

ISIL의 목적은 ‘대(大) 수니파 이슬람 국가’ 건설이다. 이들은 시리아 북동부와 이라크 북서부 사이의 국경을 허물고,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가 이뤄지는 수니파 국가를 세우려 하고 있다.

현재 중동의 지도는 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영국과 프랑스가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나눠 갖기 위해 맺은 ‘사이크스 피코 비밀협정’에 따라 그어진 것이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포나 복잡한 민족적 배경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최근 ISIL이 함락한 모술은 오랜 기간 수니파 지역이었지만 유럽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아파 지역인 바그다드와 한 국가로 묶여버렸다.

하지만 수니파와 시아파가 원래부터 늘 싸우기만 해온 것은 아니다. 이라크라는 국가가 탄생한 후 이라크 국민들은 종파에 상관없이 평화롭게 공존해 왔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 결혼도 잦았다. 대가족 안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구성원이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이 1980년부터 8년간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며 갈등이 시작됐다. 수니파인 후세인은 이라크에서 40%가량을 차지하는 시아파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에 동정적인 여론으로 돌아설까 우려했다. 그때부터 후세인의 시아파 탄압정책이 시작됐다.

하지만 2003년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후 시아파와 수니파의 입장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미국은 시아파인 누리 알말리키 정권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미국을 등에 업은 알말리키 총리는 수니파 탄압에 나섰다. 전쟁으로 파괴된 사회 인프라 때문에 척박한 삶에 놓인 수니파 국민들은 알말리키 정부의 차별정책으로 더 큰 박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2010년 총선에서 시아·수니파 연합정당인 ‘이라키야’가 승리를 거두면서 종파 화합의 희망이 생겨나기도 했지만, 정권교체를 싫어한 미 군정과 이란의 지지를 업은 알말리키는 자신의 총선 연임을 밀어붙였다. 이어 미군이 완전 철군한 바로 다음날인 2011년 12월 19일 수니파 정치지도자인 알하시미 부통령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수니파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이러한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ISIL이다. 극단적인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는 ISIL은 같은 수니파도 고개를 내저을 만큼 잔인해 사실 이라크 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웠다. 하지만 ‘알말리키 정권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후세인 정권 시절의 군부세력과 온갖 수니파 무장단체들이 ISIL의 전선에 합류했다. 이들은 수니파 주민들이 대다수인 모술과 티크리트 등을 단숨에 함락하고 시아파의 심장부인 바그다드를 향해 포위망을 좁혀가고 있다.

미국은 2011년 철군 후 이라크 사태에 다시 개입하는 것을 꺼려 왔다. 철군 후 급속도로 세력을 확장시킨 ISIL의 거점지역을 공습해달라는 이라크 정부의 비공개 요청을 여러 차례 무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ISIL이 바그다드에서 불과 60㎞ 떨어진 곳까지 진격한 데다 바이지에 있는 이라크 최대 정유시설까지 위협하자 오바마의 고민은 나날이 깊어만 가고 있다. 미국은 이미 걸프지역에 병력 6500명, F-18 등 전투기 90대, 조기경보기, 대잠 헬기가 탑재된 조지 부시 항모를 배치해놓은 상태다. 오바마가 결단만 내리면 언제든 이라크에 미사일을 폭격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다.

‘오바마 독트린’의 딜레마에 빠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공습 결단을 내린다면 이는 발표한 지 한 달도 안 된 ‘오바마 독트린’의 퇴색을 의미한다. 비어가는 나라 곳간 때문에 다른 나라 사태에 개입할 여력이 없는 오바마는 최근 “앞으로 다른 나라의 분쟁에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하고 각 국가들이 자체적으로 군사력을 증강시킬 수 있도록 측면지원만 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만약 수니 반군이 바그다드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게 되거나 바이지 정유시설을 완전히 함락하게 되면, 미국이 공습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라크 사태는 쿠르드족과 이란에는 ‘신이 주신 기회’나 다름없다. 이라크 북부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이라크 인구의 20%가량을 차지한다. 이들은 지난 23년간 북동부 지역에서 제한적 자치권만을 누려 왔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백년간 염원해온 독립의 꿈을 이루려고 한다. 실제 쿠르드 자치정부군은 이라크 정부군이 ISIL의 공격을 피해 도망간 틈을 타 이라크 정부와 통제권 싸움을 벌여온 유전지대 키르쿠크를 장악했다. 이라크 의회 내 쿠르드족 국회의원인 쇼레쉬 하지는 뉴욕타임스에 “쿠르드 지도부가 이런 황금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이라크에는 안됐지만 이번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는 기회”라고 말했다.

이라크 사태는 미국과 핵 협상을 벌이고 있는 이란에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지렛대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사태에 깊숙이 발을 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미국은 이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이라크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이란과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말라키 정부의 이란 의존도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라크 사태는 모두 시아파 정부 때문이며, 이란이 개입할 경우 좌시하지 않겠다”며 연일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열쇠를 쥔 것은 이란이다. 전문가들은 이란이 이번 이라크 사태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만 한다면 이란의 중동 내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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