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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경향] 방글라데시 최저임금,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다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3. 12. 17.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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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 사바르에 있는 의류공장 ‘라나 플라자’ 건물이 붕괴되면서 1127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그보다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에는 타즈린 의류공장에서 불이 나 110여명의 노동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 


아무런 화재 안전장비도 갖춰져 있지 않고, 언제 무너질지도 모르는 노후 건물에서 이들이 목숨을 걸고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은 한 달 38달러(약 4만원)에 불과했다.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를 통해 열악하다는 표현으로는 모자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 실태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방글라데시 정부는 여론에 떠밀려 최저임금을 인상했다. 12월부터 적용되는 새 최저임금은 66달러(약 7만원). 이전보다 77% 인상된 금액이다.

임금협상 때마다 5% 인상안을 놓고서도 노사가 진통을 겪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보면 77%란 인상률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100달러’를 요구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11월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다카 외곽에서 시위를 벌이던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동료 여성을 황급히 들어 옮기고 있다. | 다카|AP연합뉴스

11월 29일에는 최저임금 시위를 벌이던 의류공장 노동자 2명이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사망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에 격분한 노동자들이 의류공장에 불을 지르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과연 노동자들의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 왜 이들은 임금이 77%나 인상됐는데도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저임금에 시달리는 의류노동자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요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방글라데시의 물가 사정부터 알아둘 필요가 있다. 방글라데시의 최저임금이 마지막으로 인상된 것은 2010년이었다. 

2010년 이후 방글라데시의 물가는 28% 올랐다. 다카의 권위 있는 연구기관인 ‘정책대화센터’의 최근 통계를 보면, 방글라데시 3인 가구에 필요한 한 달 기본 식재료 비용은 67달러다.

결국 새 최저임금으로는 의류노동자들이 집세나 교육비는커녕 밥값조차 감당하기도 벅차다. 애초의 최저임금이 워낙 낮았던 탓에 77%란 인상률은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의류공장 노동자인 조흐마 베굼은‘미국의 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쌀을 비롯한 모든 생필품의 물가가 너무 비싸 66달러로는 한 달 생활이 불가능하다”면서 “이 월급으로 우리보고 뭘 먹고 어디서 살란 말이냐”고 말했다.

66달러 최저임금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도 아니다. 신입에게는 교육기간인 3개월 동안 최저임금보다 적은 62달러만 지급할 수 있도록 예외조항을 만들었다. 만약 공장주가 신입의 업무 발전 속도가 느리다고 판단할 경우 이 예외 기간은 3개월 더 연장될 수도 있다.

“너무 부족하다”는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절규와 달리, 다국적 의류업체들은 최저임금 인상액이 “너무 많다”며 아우성이다. 방글라데시에 공장을 둔 의류업체들은 “66달러 최저임금은 우리보고 문을 닫으란 소리와 같다”면서 “54달러 이상은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버텨 왔다.

‘극도로 낮은’ 방글라데시의 노동비용 이점 때문에 방글라데시를 선호해 온 이들 의류업체는 방글라데시의 최저임금 인상이 캄보디아, 인도, 스리랑카 등 다른 저임금 국가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하고 있다.

월마트나 H&M에 옷을 납품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의 한 의류공장 상무이사는 “이들 다국적 의류기업과 당장 다음 시즌 납품을 위한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요구를 해올지) 걱정이 크다”고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거세게 저항하고 있는 이들 기업은 라나 플라자와 테즈린 의류공장 사고 희생자들의 보상 책임조차 외면하고 있다. 타즈린 의류공장 화재의 희생자 112명은 사고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된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 

의류업체들이 타즈린 공장 희생자들에게 총 600만 달러의 보상금을 책임져야 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지만, 이들은 지금도 돈 내기를 거부하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한 공장들

방글라데시 노동자연대의 칼포나 아크터는 “그나마 유럽의 의류업체들은 나은 편”이라면서 “미국 의류업체들은 단 1페니도 낼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정말 역겨운 일”이라고 현지 언론 데일리스타에 말했다.

특히 비판은 월마트에 쏠리고 있다. 영국 시민단체인 ‘Clean Clothe Campain’의 사만다 마허는 “타즈린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들의 절반가량이 월마트에 납품됐지만, 월마트는 일말의 책임감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희생자 112명 중 97명은 그나마 방글라데시 정부가 준 보조금이라도 받았지만, 불에 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신원 확인이 불가능한 15명의 희생자 유족들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라나 플라자 붕괴사고의 희생자들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의류업체들은 사고 이후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보상금 액수를 놓고 줄다리기만 하고 있다. 이탈리아 의류업체인 베네통은 보상금산정위원회에 참가하기조차 거부해 오다가 최근에서야 여론의 압력에 밀려 위원회 논의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최저임금과 보상액 논의만 지지부진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많은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언제 불에 타고,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공장건물에서 노동을 강요당하고 있다. 라나 플라자 붕괴 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모든 공장을 대상으로 안전진단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의 안전진단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지난 10월 말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프로그램 출범 이후 진단을 진행한 공장은 아직 단 한 곳도 없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진단을 받아야 할 공장 목록조차 확정하지 않았고, 진단을 진행할 감독관 역시 보강하지 않았다.

지난 10월 초에도 다카 외곽의 의류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잔업 중이던 노동자 10여명이 사망했는데, 당시 공장에는 화재 안전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공장이 단 한 번도 정부로부터 안전점검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방글라데시 대학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의 5분의 3은 붕괴위험에 노출돼 있다.

의류산업이 수출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캄보디아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캄보디아는 지난해 40억 달러 이상의 의류상품을 수출했지만, 의류노동자의 최저임금은 80달러 수준이다. 작업공장 화재위험과 아동 노동 문제도 끊이지 않고 지적되고 있다. 현재 캄보디아 의류회사의 대부분은 방글라데시와 마찬가지로 해외 다국적 기업의 소유다.

캄보디아 의류노동조합 대표인 아쓰 쏜은 “선진국의 의류기업들이 자신들의 순익을 조금이라도 노동자와 함께 나눈다면 최저임금을 150달러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기업은 노동자들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캄보디아데일리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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