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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환경으로 눈을 돌리다

국제뉴스/16장으로 본 세상

by 정소군 2015. 6. 25.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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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기후변화에 대한 전 지구적 긴급 대응을 촉구하는 회칙을 발표했다. 전 세계 10억여명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전파되는 회칙은 교황이 발표하는 최고 권위의 교서다. 회칙의 주제로 기후문제가 다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종교와 환경은 다소 어울리지 않는, 의외의 조합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가난한 자를 대변해왔던 교황이 환경문제로 보폭을 넓힌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가뭄 등 기상이변의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나라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엔과 환경론자들은 올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변화 협약 회의를 앞두고 교황이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기후변화 회의론자들과 화석·석유 에너지 업계는 “교황은 본연의 업무인 신학에나 충실하라”며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필리핀 타클로반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17일 노란 비옷을 입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_ AP연합뉴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 강하게 반발

 

 프란치스코 교황은 181쪽 분량의 ‘평범한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찬양하라’는 제목의 ‘회칙(encyclical)’을 발표했다. 그는 인간의 탐욕과 자기파괴적인 기술들이 ‘우리의 자매, 어머니 지구’를 위험한 상태에 처하게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구 온난화는 화석연료 중심의 산업 모델 때문에 발생했다”면서 “가톨릭 신자이든 아니든 신의 창조물인 지구를 후세대에 넘겨줄 수 있도록 보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기후변화가 전쟁이나 분쟁을 촉발할 수 있다”면서 “지구를 오염시키면서 성장한 부유한 나라들은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도와줘야 하며, 세계 일부 지역에서는 경제의 저성장도 감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후변화 문제를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올 초 필리핀 순방에 동반한 기자들에게 “지구 온난화는 대부분 인간이 만들어낸 현상”이라면서 “자연의 뺨을 때린 것은 인간으로, 우리는 자연을 너무 많이 착취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 교황은 이번 회칙 발표에 그치지 않고 오는 7월 남미를 시작으로 9월에 쿠바와 미국을 방문할 때에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실천을 촉구할 예정이다.
 
 유엔은 교황의 회칙 발표에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유엔환경계획은 성명을 통해 “교황의 회칙을 통해 과학과 종교가 기후변화 방지에서 합일점을 이뤘고, 이제 본격적으로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도 교황의 회칙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17일 자신의 트위터에 “기후변화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만큼 우리는 인류의 하나 됨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적었다. 북미이슬람소사이어티(ISNA)의 이맘(성직자)인 모하마드 마지드도 “지구를 지키려면 모든 종교인들이 하나가 돼야 하는 만큼 교황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황은 이번 회칙을 1년 가까운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그러나 회칙은 공식 발표를 사흘 앞두고 이탈리아 현지 언론인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유출됐다. 뉴욕타임스는 유출 배경을 놓고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반대하는 바티칸의 보수파들이 의도적으로 흘린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실제 회칙을 보도한 레스프레소 기자는 평소 프란치스코 교황의 진보적인 행보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교황의 이번 회칙에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미국 공화당의 환경규제 반대론자들일 것이다. 당장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회칙이 공식 발표되자마자 교황은 정치문제에 개입하지 말라며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종교를 정치적 논쟁거리로 삼아선 안 된다. 종교는 정치영역에 관여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람답게 만드는 데 쓰여야 한다”고 비판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 역시 회칙 발표를 앞둔 이달 초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과학은 과학자들에게 맡기고 교회는 신학과 도덕에 집중해야 한다”며 간접 비판한 바 있다. 특히 공화당의 대표적 환경규제 반대론자이자 상원 환경공공업무위원장인 제임스 인호페 의원도 “교황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면서 “본연의 일에나 충실하라”고 독설을 내뱉었다.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에서 2013년 16살 정도로 추정되는 북극곰이 가죽과 뼈만 남은 아사 상태로 발견됐다. 세계자연보전연맹은 기후변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면서 북극곰이 45년 안에 절반 가까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했다. _ 글러벌워밍이미지스 홈페이지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와 정치인


교황의 회칙은 이미 널리 알려진 기후변화와 지구 온난화 문제를 지적하며 대책을 촉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들이 이렇게 반발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제임스 인호페 의원은 지난 1월 의회 회의 도중 갑자기 밖에서 눈덩이를 뭉쳐와 바닥에 던지면서 “2014년이 기록적으로 따뜻한 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지구 온난화 주장과 달리) 지금 바깥은 이렇게 매우 춥다”고 조롱했던 인물이다. 이들은 인간의 에너지 소비가 지구 온난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그는 “지구 온난화 이론은 비과학적인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연설을 할 때마다 하버드-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센터의 윌리 순 박사의 연구 결과를 단골로 인용했다. 순 박사는 지구 온난화는 인간이 아니라 태양 에너지 활동의 변동성 때문이라는 논문을 발표해온 인물이다. 그런데 지난 2월과 3월 그린피스와 가디언이 폭로한 바에 따르면, 인호페 의원은 지난해 선거 당시 다국적 석유메이저 BP가 운영하는 정치행동위원회로부터 선거운동자금 1만 달러(약 1114만원)를 받았다. 액수는 크지 않지만, 이는 석유기업들이 의회의원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를 벌여온 사례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그런가 하면 순 박사는 지난 14년 동안 화석연료업계로부터 120만 달러(약 13억3000만원) 이상의 돈을 받고 연구를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석유업체들이 과학자들에게 돈을 주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문을 쓰도록 하면, 석유업체에게서 돈을 받은 정치인들이 그 논문을 근거로 기후변화 규제법안을 저지하는 비밀 커넥션이 형성돼 온 셈이다.
 
이 같은 학계와 업계의 유착은 담배, 산성비, 오존구멍 문제에서 똑같이 반복돼 왔던 패턴이다. 나오미 오레스케스 캘리포니아대 교수가 쓴 <의혹을 팝니다>에는 프레드 싱어, 프레드 사이츠 등 ‘기업의 용병이 된’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로켓이나 원자폭탄을 전공한 학자들로 인체 건강에 아무런 전문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담배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들을 쏟아냈다. 담배회사들이 결국 소송에서 패하자, 이번에는 석유기업들의 자금지원이 풍부한 ‘기후변화’로 무대를 옮겨 “지구 온난화는 입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과학은 어느 분야보다도 객관적인 학문으로 여겨진다. 관찰과 실험, 분석을 통해 검증된 가설만이 학설로 인정된다. 그러나 기업의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후변화 문제는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다국적 에너지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이슈다. 교황까지 가세한 기후변화 논쟁은 올 연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 회의를 앞두고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진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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